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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금(名琴) 이수경(李壽卿)의 음악 유산

The life and Musical Acheivements of Kŏmun'go Master Yi Su-gyŏng(李壽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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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음악학

초록

송사(松史) 이수경(李壽卿, 1882~1955)은 조선후기와 대한제국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궁중 악사로 거문고의 명인이다. 본고에서는 궁중 악사 이수경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하고, 이를 통해 제도적 변천 속에서 궁중음악의 전승 상황과 음악인의 활동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수경은 1892년(고종 19)에 장악원 악공으로 입사하여 가전악과 전악을 거쳐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수장과 아악사를 역임한 궁중음악의 지도적 인물이다. 이수경의 조부 이인식(李寅植)과 부친 이원근(李源根)은 조선 후기 피리의 명인으로 장악원의 악사를 지냈고, 이수경의 아들 이병성과 손자 이동규·이정규까지 5대째 궁중음악의 맥을 전승하고 있다. 세습 음악 가계 출신으로서 이수경은 어려서부터 장악원의 악인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아 우방 차비로 활동하였다. 그는 거문고 전공으로 <영산회상> 연주에 절묘한 명금(名琴)이었으며, 이왕직아악부 시기에는 아악수장과 아악사로서 집박(執拍)을 담당하고, 아악생을 교육하였다. 이수경은 세습 악인의 가통을 이어 타고난 자질과 수련으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거문고 연주와 악장, 정재 교습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수경의 음악 활동은 궁중 행사에서 악공과 전악으로서의 활약, 이왕직아악부 시절 이습회와 방송 활동과 같은 개인의 기량을 발산하는 연주 활동, 신진 악사의 교육과 발굴을 위한 교습, 악기 제작과 음악 기관의 서무 분야까지 폭넓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이수경의 이력을 통해 사회 변혁에 따른 음악 기관의 제도적 변화 속에서 궁중음악의 전승 상황과 음악인들의 활동 내용을 헤아려볼 수 있다. 이수경은 조선 후기 장악원부터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까지 일생을 궁중음악에 몰두하여 그 정신을 몸소 실현하고 전승한 악사이다. 그가 이룩한 일련의 업적은 시대적 변혁기에서 단절 위기에 놓인 궁중음악의 맥을 잇는 데 공헌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이수경의 호방한 거문고 가락과 그가 지도한 정재, 종묘 악장은 오늘날 귀중한 음악 유산으로 전해진다.

Abstract

Yi Su-gyŏng (李壽卿, 1882–1955), known for his contributions as a court musician during the late Chosŏn Dynasty, the Korean Empire, and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s celebrated as a master of the kŏmun'go. This paper summarizes his life and achievements, examining the transmission of court music and the activities of musicians within the context of institutional changes. Yi Su-gyŏng joined the Royal Music Institute (Changagwŏn, 掌樂院) as a musician in 1892 (the 19th year of Gojong’s reign) and became a leading figure in court music, holding positions as the Aak sujang (雅樂手長) and the Aaksa (雅樂師) of the Yiwangjik aakpu (李王職雅樂部). His grandfather, Yi In-sik, and father, Yi Wŏn-gŭn, were renowned performers of the p'iri during the late Chosŏn period, and the legacy of court music has been preserved through five generations, including his son Yi Pyŏng-sŏng and grandsons Yi Tong-gyu and Yi Chŏng-gyu. Coming from a hereditary musical lineage, Yi Su-gyŏng received systematic training in musicianship from a young age, and performed as a musician during court banquet. Also he was a distinguished kŏmun'go player known for his exquisite performance of "Yŏngsan hoesang" During his time at the Yiwangjik aakpu, educating new musicians, and engaging in instrument production and administrative work for music institutions. Yi Su-gyŏng not only inherited the lineage of hereditary musicians but also demonstrated remarkable talent and skill through rigorous training, establishing himself as a preeminent figure in kŏmun'go performance, instructing Chongmyo Cherye akchang, and the teaching of court dances (Chŏngjae, 呈才). Through Yi Su-gyŏng's career, one can assess the state of court music transmission and the activities of musicians amidst the institutional transformations prompted by social changes. Yi Su-gyŏng dedicated his life to court music from the late Chosŏn period through the Japanese colonial era, embodying and preserving its spirit as a musician. His accomplishments hold significance for their contributions to sustaining court music during a time of dramatic transformation and potential disruption. His elaborate kŏmun'go melodies, alongside the court dances and ritual music he taught, remain invaluable cultural legacies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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