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봉 이병성의 생애와 음악 활동 고찰
A Study on Yi Pyŏng-sŏng's Life and Music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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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병성은 한국의 대표적인 세습궁중악 가문으로, 이인식-이원근-이수경의 뒤를 이어 4대째 가계의 맥을 이어 내려온 인물이다. 그는 이왕직아악부양성소 제2기생으로 피리를 전공, 양금을 겸공하였으나, 가계의 영향 탓인지 동기생들에 비해 음악적 재능이 돋보였다. 이병성은 선·후배 및 동급생들 사이에서도 뛰어난 성음과 재능으로 가곡에도 두각을 나타내었고, 오늘날까지 선가라 기억될 만큼 일세를 풍미한 가곡의 거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병성의 음악활동은 1928년부터 나타나며, 그의 전공인 피리와 겸공인 양금은 물론, 여러 악기들을 연주했던 모습을 이왕직아악부 연주 사진과 음반 취입·경성방송국 라디오·이습회 기록 등을 통해 발견된다. 특히 하규일의 뒤를 이어, 1930년대 중반을 시작으로 가곡·가사·시조 등 다앙한 레퍼토리를 아우르며 노래하였다. 주 레퍼토리로 보이는 남·녀창 가곡에서 이병성은 여창을 담당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구성으로 이습회 발표는 물론 라디오 방송에서도 수 차례 출연했다는 것이 이채롭다. 그는 가곡을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즐겨하였으나 악기 연주도 꾸준히 해 온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으며, 그가 채보한 가곡보와 더불어 궁중정재를 담은 무보 역시 오늘날까지 귀중한 자료로 전해진다.
Abstract
Yi Pyŏng-sŏng is a member of Korea's representative hereditary royal court family, and is the fourth generation in the family line, following Yi In-sik, Yi Wŏn-gŭn, and Yi Su-gyŏng. He was a member of the second class of Yiwangjik Aakpu Training Center and majored in P'iri and yanggŭm, but perhaps due to his family influence, his musical talent stood out compared to his fellow students. Yi Pyŏng-sŏng stood out among his seniors, juniors, and classmates for his outstanding voice and talent in songs, and he is remembered as a master of songs that influenced the world to the point that he is remembered as a good singer to this day. Yi Pyŏng-sŏng's musical activities began in 1928, and his ability to play not only the P'iri, which was his specialty, and yanggŭm, which was his specialty, but also various instruments, can be found through photos of Yiwangjik Aakpu performance photograph, recordings, Kyŏngsŏng Broadcasting Station radio, and Yisŭphoe. In particular, following Ha Kyu-il, he sang a wide range of repertoires, Kagok(歌曲), Kasa(歌詞), Sijo(時調) starting in the mid-1930s. Yi Pyŏng-sŏng was also in charge of the female singer in the men's and women's song songs that appear to be the main repertoire, and it is unique that with this composition, he appeared several times on radio broadcasts as well as presentations at Yisŭphoe. Although he enjoyed musical activities centered on Kagok, he was a versatile person who also consistently played musical instruments. In addition to the Kagokbo(歌曲譜) he transcribed, the mubo(舞譜) included Chŏngjae are still valuable materials to thi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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