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복설(復設) 이후 개항장(開港場)·개시장(開市場) 감리서(監理署)의 관할 업무와 수행 실태
The business of the Superintendent Offices(Gamriseo) at the treaty ports and open markets in Korea after their reconstruction in 1896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監理署의 외국인 관할 관서로의 성격 변화 이후 그 처리 업무에 있어서 이전과 구별되는 부분으로는 먼저 경찰 감독과 관련한 권한의 변경이 있었다. 또한 監理의 개항장재판소 판사 겸직에 따른 사법권의 행사와 더불어 외국인의 토지 문제 관련 업무의 증가역시 주요한 특징이다. 전자의 경우 영사재판권으로 인해 외국인 범죄에는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으며, 후자는 가속화되는 외국인의 토지침탈 및 이를 저지하기위한 한국의 대응과 연관이 있었다. 그 결과 감리가 개항장·개시장에서 외국인들의 행패를 막고 내국인들의 생명과 재산상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전에 중국인들의 횡포에맞서 조선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했던 會寧監理署나 러시아·일본의 불법적인 토지침탈에 맞섰던 務安監理 秦尙彦과 같은 갑오개혁 이전의 사례들도 있지만, 東萊監理 吳龜泳이나 慶興監理 黃祐永, 그리고 목포에서 조선인 부두노동자들의 편에 섰던 특히주목할 만한 사례인 무안감리 金星圭의 경우와 같이 주로 1903년 감리·지방관 분리조치 이후 이러한 사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Abstract
What became diff erent on the duties of Gamriseo(監理署, Superintendent Offi ce) after it was reconstructed in 1896 and turned into the public offi ce for the control over foreigners in 1903 was that Gamri began to exercise jurisdiction power originated from his holding the position of the judge in the courts at the treaty ports concurrently, and the duties on land problems involving foreigners increased. Gamri’s exercise of the jurisdiction power had a limit caused by consular jurisdiction of the Great Powers at the treaty ports and open markets, and the latter had much to do with the accelerated disseise of land by foreigners and Korean answer to that. As a result, the cases where Gamri tried to save lives and properties of Korean people against foreigners’ misbehavior came to appear, like Jin Sang-Eon(진상언, 秦尙彦) at Moo-An(무안, 務安), Oh Gwi-Young(오귀영, 吳龜泳) at Dong-Rae(동래, 東萊), Hwang Woo-Young(황우영, 黃祐永) at Kyung-Heung(경흥, 慶興), and Kim Sung Kyu(김성규, 金星圭) at Moo-An.
참고문헌 (40)
- "高宗實錄", ~
- "承政院日記", ~
- "官報", ~
- "駐韓日本公使館記錄", ~
- "司法稟報(乙)", 奎17279, ~
- "外部請議書", 奎17722, ~
- "仁川港案", 奎17863-2, ~
- "務安報牒", 奎17864-2, ~
- "東萊港報牒", 奎17867-2, ~
- "慶興報牒", 奎17870-2, ~
- 서울大學校 奎章閣, "外部訴狀" (2000), 서울대 규장각
- 金星圭, "草亭集(『草亭先生文集』 3)" (1999), 景仁文化社
- 도면회, "한국 근대 형사재판제도사" (2014), 푸른역사
- 모리야마 시게노리, "近代韓日關係史硏究–조선식민지화와 국제관계" (1994), 玄音社
- 裵鍾茂, "木浦開港史 硏究" (1994), 느티나무
- 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감리서 방판 민건호와 그의 일기 해은일록", ~ (2014)
- 孫禎睦, "韓國開港期 都市變化過程硏究" (1982), 一志社
- 李鉉淙, "韓國開港場硏究" (1975), 一潮閣
- 金容燮, "光武量田의 思想基盤–量務監理 金星圭의 社會經濟論", 亞細亞硏究, 15(4) (1972),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 金容旭, "釜山租界考", 韓日文化, 1(1) (1962)
- 金鍾先, "暗使日商民 務安監理署 난입 占據에 關한 考察", 木浦大學 論文集, 4 (1982)
- 김현석, "인천항 감리서에 대한 기초적 연구", 인천역사, 1 (2004)
- 문준영, "1895년 裁判所構成法의 ‘出現’과 日本의 役割", 법사학연구, (39), pp.35~81 (2009), 한국법사학회[DOI]
- 민회수, "조선 開港場 監理署의 성립 과정(1883~1886)", 동북아역사논총, (36), pp.139~186 (2012), 동북아역사재단[DOI]
- 민회수, "開港場 警察의 설치와 운영(1884∼1896)", 사학연구, (108), pp.101~143 (2012), 한국사학회
- 민회수, "한국 근대 開港場·開市場의 監理署 연구", 박사, 국사학과, pp.2013
- 민회수, "갑오개혁기 개항장 監理署 일시 폐지의 배경", 한국근현대사연구, (75), pp.7~40 (2015), 한국근현대사학회
- 민회수, "1880년대 釜山海關․監理署의 개항장 업무 관할 체계", 한국학논총, 47, pp.241~272 (2017), 한국학연구소
- 민회수, "개항기 海關 감독기관으로서의 조선 監理署의 기원과 특성- 동아시아 3국의 稅關 제도에 대한 비교를 바탕으로 -", 한국사연구, (180), pp.155~198 (2018), 한국사연구회
- 朴哲佑, "群山港의 開港에 關한 硏究 : 1897~1910年을 中心으로", 석사, 사회교육, pp.1996
- 徐珍敎, "대한제국기 高宗의 황제권 강화책과 警衛院", 한국근현대사연구, 9 (1998), 한국근현대사학회
- 송정숙, "조선 개항장의 감리서(監理署)와 기록- 부산항을 중심으로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13(3), pp.255~281 (2013), 한국기록관리학회[DOI]
- 왕현종, "대한제국기 한성부의 토지·가옥조사와 외국인 토지침탈 대책", 서울학연구, 10 (1998),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 은정태, "개념의 충돌인가, 해석의 문제인가? - 영사재판의‘청심(廳審)’조항을 중심으로 -", 개념과 소통, (4), pp.5~34 (2009), 한림과학원[DOI]
- 李鉉淙, "監理署 硏究", 亞細亞硏究, 11(3) (1968),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 鄭光燮, "開港期における地方制度–監理署を中心に", 上智法論集, 42(2) (1998)
- 정광섭, "甲午改革期監理署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 한일관계사연구, (56), pp.249~306 (2017), 한일관계사학회
- 한지헌, "理事廳의 설치 과정(1905~1907년)", 사학연구, 116 (2014), 한국사학회
- 한지헌, "이사청(理事廳)직제와 운영", 역사학연구, 58 (2015), 호남사학회
- 한지헌, "1906~1910년 통감부 이사청 연구", 박사, pp.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