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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의 喪葬과 灰隔

Burial Structure of Joseon Dynasty and the Hoeg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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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성리학을 사회통치이념으로 채택하고, 經國大典 반포와 國朝五禮儀를 제정하여 신분질서를 제시하였다. 사대부는 仁祖 26(1648)年에 간행된 喪禮備要와 이후에 편찬된 四禮便覽을 따랐다. 이에 따라 탄과 삼물(石灰․細沙․黃土 拌均者)을 이용하여 관을 넣을 수 있게장(墻)을 만들어 광과 관을 구별짓는 회격(灰隔)이라는 새로운 무덤양식이 지배층의 묘제로채택된다. 상례비요와 사례편람에서 ①곽을 사용한 방식, ②층층으로 다진 방식, ③내부에 흙을 넣어 회격을 조성하는 방식 등이 확인된다. 회격은 조선시대 무덤의 매장주체부를 형성하는 하나의 양식으로, 세조 이전까지 지배층에서 채택한 석실(곽)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왕과 대부사서인에게 모두 적용된다. 이러한 인식의 토대에는 회격이 온전히 돌이 되어 시신을 풀뿌리와 벌레 등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는 장점에 의해 사후(死後)의 효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지배층에 권장된사항으로 판단된다. 회격은 유풍(遺風)과 발굴조사를 통하여 1980년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수 있는데, 고래로 내려오는 실․곽․충전 등이 복합된 개념으로 수용된 것이다. 본 연구는 추후 발굴조사를 통하여 얻어지는 많은 조선시대 토광묘의 회격을 이해하는 한단초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조선의 성리학적 상례에 대한전반적 이해의 첫걸음이될 것으로 기대한다.

Abstract

Joseon adopting Neo-Confucianism as a ruling ideology suggested order ofsocial caste through promulgation of Gyeongguk Daejeon(『經國大典』,Grand Code of Managing the Nation) and enactment of Gukjo Oryeeui(『國朝五禮儀』, The National Five Rites). Literati followed Sangryebiyo(『喪禮備要』, Guidebook for Funeral Rites) compiled in the reign of 26th year ofKing Injo(1648) and Saryepyeonram(『四禮便覽』, Handbook for four theceremonial occasions of coming-of-age, marriage, funeral, and ancestorworship) compiled later. A new burial structure called Hoegyek(灰隔) whichseparated a burial hole and a coffin with making a wall. According toSangryebiyo and Saryepyeonram, there were three types of burial as follows:1) the first type using an outer-coffin, 2) the second type tramping earthlayer upon layer, and 3) the third type forming a Hoegryek with filling aspace between a coffin and a burial hole with earth. The Hoegyek, a style to prepare a burial platform were considered to be afacility to substitute a stone chamber(or an outer-coffin) before the reign ofthe King Sejo, and it was applied to kings, officials, and commoners. TheHoegyek, considered a facility to protect the dead fromgrass roots andinsects seems to have been recommended as a device to practice filialpietyafter ancestor’s death. Based on excavation reports and a custom handeddown, the Hoegyek, had been adopted until the 1980s, and it could beunderstood as a facility adopted as combined concept of a burial chamber, anouter-coffin, and a filling up. This study will be a foundation to understand the Hoegyekof pit burialsbuilt in the Joseon period which will be reported in future excavations, and it will be also a first step to understand Joseon’s funeral rites based onNeo-Confucianism in a general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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