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횡구식 묘제의 출현과 배경
The Appearance and Background of the Horizontal tomb of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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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분묘는 장방형의 묘광을 파고 시신(목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안치한 후 흙을 채우고 봉분을 올리는 수혈식의 묘제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의 정밀발굴조사 과정에서 조선시대 토광묘와 회묘의 발치 쪽으로 간격을 두고 묘광과 비슷한 크기의 장방형 수혈이 확인되고, 묘광의 단벽과 수혈의 단벽이 연결된 형태가 간혹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분묘를 횡구식 석실(곽)묘의 구조를 차용하여 ‘횡구식 묘제’로 정의하였다. 먼저 횡구식 묘제에서 실제 매장이 가능한지를 확인하였다. 회묘의 경우 사방회와 천회를, 토광묘의 경우 목곽을 사용하여 매장주체부를 먼저 조성하였다. 이후 매장주체부의 규모(길이×너비)를 묘도의 규모(길이×너비), 매장주체부의 규모(너비×높이)를 통로부의 규모(너비×높이)로 비교하여 본 결과, 대부분 실제 매장이 가능한 수치로 확인되었다. 또한 횡구식 토광묘와 회묘에서 발치쪽 단벽을 마지막에 막음한 흔적이 다수 확인되어 실제 매장이 진행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횡구식 묘제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을 분석한 결과, 백자지석이나 묘표석, 동전 등을 통해 조선시대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자기류와 금속류의 상대연대 또한 15~16세기에 해당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정치·사회의 중심이 되었고, 특히 예법은 『朱子家禮』가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성종 때까지도 수도(묘도)가 조성되는 석실(곽)을 선호하는 문화가 사대부 사이에 유지되고 있었으며, 이는 박익과 노회신의 묘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석실(곽)이 회묘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묘도가 남아 이전 시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분묘의 조성계층도 종친과 대신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에 횡구식 묘제는 조선시대 전기에 주로 조성되었으며, 『朱子家禮』의 예법이 정착되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Abstract
In general, the tombs of the Joseon Dynasty are recognized as a blood transfusion method in which a rectangular tomb is dug and a body (wood coffin) is laid down from top to bottom, filled with soil, and a burial mound is raised. In the recent precision excavation process, rectangular blood transfusions similar to those of the tomb were found at intervals toward the foot of the Togwangmyo and Hoemyo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the short walls of the tomb and the short walls of the blood transfusion were sometimes connected. Therefore, this type of tomb was defined as a "Horizontal tomb" by borrowing the structure of a cross-sectional stone chamber (stone wall) tomb. First, it was confirmed whether the actual burial was possible in the lateral mausoleum. In the case of Hoemyo, the burial body was first created using Sabanghoe and Cheonhoe, and in the case of Togwangmyo, the wooden frame was used. After that, the size (length×width) of the store subject was compared with the size (length×width) of the grave map and the size (width×height) of the store subject by the size of the aisle, and most of them were confirmed to be actual stores. In addition, a number of traces of blocking the foot-side fault wall at the end were found in the horizontal earthen mine and Hoemyo, and it is believed that the actual store was conducted. Next,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relics excavated inside the horizontal tomb, it was found to have been built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rough white porcelain stones, tombstone stones, and coins, and the relative dates such as porcelain and metals are also from the 15th to 16th centuries. In the Joseon Dynasty, Neo-Confucianism became the center of politics and society, and in particular, etiquette became the standard for 『朱子家禮(Zhu-xi's Family Courtesy)』. However, even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the culture of preferring stone chamber(stone wall) tomb, where the Soodo (Myodo) was created, was maintained between the Sadaebu(or noble families), which could be confirmed in the tombs of Park Ik and Roh Hoe-shin. In the process of replacing stone chamber(stone wall) tomb with a Hoemyo, it is believed that Myodo remained and continued the tradition of the previous era, and the clan and vassal of the tomb would have been the mainstream. Therefore, it is not confirmed after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when the etiquette of 『朱子家禮(Zhu-xi's Family Courtesy)』 was esta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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