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世紀 麗明關係와 濟州島의 歸屬 過程
Korean-Chinese Relations in the 14th century and Recovery Process of Jeju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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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충렬왕대 고려는 제주도의 지배권을 원에게 빼앗겼다. 이후 충렬왕은 지속적인 원과의 교섭으로 ‘행정=고려’, ‘마필=원’이라는 형식으로 제주도의 관할권을 일부 되찾아왔다. 원말 공민왕은 반원을 내세우며 본격적으로 고려의 고토 수복에 중점을 두었고, 북진과 함께 제주도의 귀속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신생국 명이 건국되자 공민왕은 제주도의 소유권을 두고 홍무제와 새로운 교섭을 시작하였다. 공민왕은 먼저 제주도 문제를 홍무제에게 제안하였고, 충렬왕대의 교섭 결과와 같이 제주의 소유권은 고려에 있고, 대신 말만 때때로 명에 진헌하는 형식으로 굳어졌다. 공민왕 말년과 우왕 초기부터 발생한 공민왕 시해, 명사 살해 사건 등 연이은 악재로 여명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우왕 중기 이후 여명관계가 개선되자 홍무제는 다시 한 번 제주도의 고려 소유권을 확정하였고, 이는 그 뒤를 이은 조선에도 그대로 승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본고는 이와 같은 제주도 소유권의 교섭 과정과 말 진헌 등을 중심으로 이 시기 복잡다단했던 한중관계의 일면을 고찰하였다.
Abstract
In the reign of King Chung‘ryol, Jeju Island was taken by Yuan dynasty. Since then, King Chung‘ryol has regained some of the jurisdiction of Jeju Island in the form of ‘Administration = Goryo’ and ‘Horse = Yuan dynasty’. When the new empire Ming dynasty was founded, King Gong’min started a new negotiation with Emperor Hongwu with the ownership of Jeju Island. King Gong’min first proposed the problem of Jeju Island to Emperor Hongwu, and as a result of the negotiation Jeju's ownership is in Goryo dynasty, and instead sometimes offered tribute to horse. Goryo dynasty-Ming dynasty relations was deteriorated rapidly due to last period of King Gong’min and Early King Wu. Goryo dynasty-Ming dynasty relations improve middle King Wu, Emperor Hongwu once again confirmed the ownership of Jeju Island in Goryo, and succeeded it to the Joseon dynasty and now. This research examined Korea-China relations focusing on Jeju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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