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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陽九曲圖』 연구

A Study of the Painting of the Nine Bends at Hwa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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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화양동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아름다운 골짜기인데, 2014년 명승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華陽九曲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학자 宋時烈(1607∼1689)이 1666∼1688년 이곳에 은거하였기 때문이다. 九曲이란 명칭은 중국 송나라 때 성리학을 완성시킨 朱熹(1130∼1200)에서 비롯되었다. 주희는 복건성 무이산에 精舍를 짓고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를 가르쳤다. 그리고 무이산의 아름다운 구곡을 읊은 시 「武夷棹歌」를 지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 율곡 李珥(1536∼1584)는 황해도 해주에 은거하면서 주희를 본받아 「高山九曲歌」를 지었다. 송시열의 학문은 이이를 계승하였다. 그래서 송시열이 죽은 후 제자들은 화양동에 아홉 곳의 지명을 정해 화양구곡을 완성하였다. 이이의 학문을 계승한 西人이 조선 후기 정치사의 주류를 차지하자, 이들은 주희-이이-송시열로 이어지는 성리학의 도통을 확립하고자 했다. 중국 성리학의 도통이 조선으로 이어졌다는 朝鮮中華思想의 배경은 중국 명나라가 오랑캐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에 망했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이이의 「고산구곡가」를 그림으로 표현하여 『고산구곡도』를 그리고자 하였다. 송시열이 죽은 뒤 제자들은 송시열의 유지를 이어 화양동에 명나라 황제를 제사지내는 萬東廟를 짓고 『화양구곡도』를 그렸다. 『화양구곡도』를 처음 그린 사람은 송시열의 제자 金鎭玉(1659∼1736)이다. 그리고 송시열의 수제자 權尙夏(1641∼1721)의 조카인 權燮(1671∼1759)이 화양구곡도를 계승하고자 했다. 권섭의 희망은 손자 權信應(1728∼1786)에 의해 이루어졌다. 『화양구곡도』는 단순한 실경산수화가 아니라 유교철학의 전통,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전하는 『화양구곡도』는 충북대박물관 소장품과 李馨溥(1791∼1851)가 그린 것, 그리고 조선민화박물관 소장품이 있다. 충북대본은 권신응이 그린 것으로 주장되었으나 화풍분석 결과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충북대본에는 화면에 동서남북의 정확한 방위를 적어 회화식 지도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형부가 그린 것, 조선민화박물관 소장본은 더욱 후대의 작품이어서 사실성이 떨어진다.

Abstract

A beautiful valley in Cheongcheon Township, Goesan County, North Chungcheong Province, Hwayang Neighborhood was designated in 2014 as Scenic Site No. 110. The name “[Nine] Hwayang Valley[s]” or “Nine Bends at Hwayang” (Hwayang Gugok) derives from the fact that Song Si-yeol (1607∼1689), a renowned scholar from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lived in retirement here during 1666-1688. The name “Nine Bends” (Gugok) originates from Zhu Xi (1130∼1200), who had perfected Neo-Confucianism during the Song Dynasty (960∼1279) in China, Zhu had built a hermitage on Mt. Wuyi in Fujian Province, studying and teaching there. He had also composed “Boating Song of the Nine Bends at Wuyi” (Wuyi Jiuqu Zhaoge), a poem praising the beauty of the nine bends in the stream along Mt. Wuyi. A Korean Confucian during the Joseon Dynasty, Yi I (1536∼1584; penname: Yulgok) wrote “Boating Song of the Nine Bends at Gosan” (Gosan Gugokga) in emulation of Zhu Xi while living in retirement in the city of Haeju in Hwanghae Province. Academically, Song Si-yeol followed Yi I’s steps. As a result, after his death, his disciples named nine places in Hwayang Neighborhood, thus completing the Nine Bends at Hwayang. The main force in Korean political history during the latter half of the Joseon Dynasty, the Westerners or the Western Faction (Seoin) established the academic lineage of Neo-Confucianism leading from Zhu Xi to Yi I to Song Si-yeol. The idea that the orthodox lineage of Neo-Confucianism in China had been transmitted to Joseon stemmed from the fact that the Ming Dynasty (1368∼1644) had been conquered by the Qing Dynasty (1616∼1912), a state founded by the “barbaric” Jurchens (Manchus). Song Si-yeol sought to express Yi I’s “Boating Song of the Nine Bends at Gosan” pictorially, thus creating the Painting of the Nine Bends at Gosan (Gosan Gugokdo). Following his death, his disciples produced the Painting of the Nine Bends at Hwayang (Hwayang Gugokdo). The Painting of the Nine Bends at Hwayang is not simply a true-scenery landscape painting (jin’gyeong sansuhwa) but reflects a tradition and a political background in Neo-Confucianism. Although the Painting of the Nine Bends at Hwayang was created many times, extant versions consist of the one housed in the Chungbuk National University Museum, one created by Yi Hyeong-bu (1791∼1851), and one housed in the Chosun Minhwa Museum. The work housed in the Chungbuk National University Museum accurately indicating the cardinal directions of east, west, north, and south, thus demonstrating its characteristics as a pictorial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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