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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 진성왕에 대한 최치원의 이중적 인식과 그 의미

Choi Chiwon dual perception of Queen Jinseong and its implications in Late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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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라말 진성왕에 대한 최치원의 인식을 살펴본 것이다. 진성왕은 신라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여왕이었다. 진성왕은 여왕즉위가 가능하면서 동시에 더 이상 여왕이 즉위하지 않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시대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 최치원이다. 최치원은 진성왕대 왕성하게 정치 활동을 했던 동시대인으로 진성왕에 대해 이중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최치원은 진성왕이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또한 당시 혼란기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 원인을 진성왕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여왕이라는 성별을 문제시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진성왕이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으며, 이분법적으로 차별적 인 성별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진성왕에 대해 이중적 인식을 가졌던 것은 신라의 존속이 위협당하는 혼란한 상황에서 최치원은 국왕인 진성왕을 구심으로 국가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최치원은 성차별적 의식과 별개로 국왕으로서 진성왕의 정통성과 권위를 인정하고 왕권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Choi Chiwon's perception of King Jinseong in Late Silla. King Jinseong was the third and last queen of Silla. King Jinseong symbolizes the change of times when the queen is possible to ascend the throne and at the same time, the queen is no longer crowned. Choi Chiwon is a symbolic figure who can understand these changes in the times. He was one of her contemporaries who was very energetic. Choi Chiwon shows a dual perception of King Jinseong. Choi Chiwon believed that King Jinseong had the legitimacy of the throne. He also acknowledged that it was a period of chaos at the time, but did not recognize the cause as King Jinseong and did not take issue with the gender of the queen. However, he had a dichotomous perception of men and women, and was strongly aware of the gender identity of King Jinseong. Choi Chiwon's dual perception seems to be due to his dichotomy of gender as a Confucian scholar, and on the other hand, his idea of stabilizing the state by strengthening the royal authority in the late Silla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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