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잠 의례의 동선과 제단의 크기
A review of the movement of rituals in the Seonjam altar and changes in the size of the altar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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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성종 8년(1477) 윤2월 27일과 영조 43년(1767) 3월 10일에 시행된왕비의 선잠단과 채상단에서의 의식을 검토하여 왕비가 실제로 제사를 할때 의식의 동선을 초헌관의 움직임과 비교 검토해 보았고, 왕비가 채상단을통한 친잠의 방식과 그 움직임을 추적해 보았다. 성종 8년에는 선잠단에서 관료의 제사가 시행된 후 창덕궁에서 왕비의친상(親桑)이 이루어졌는데, 여기서는 왕비의 친제가 없었다. 왕비가 궁 밖으로 나가 행사를 치룰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것으로, 관료들만이 행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영조 43년의 행사에서는 숙종대의 종묘, 영녕전의묘현례를 통해 제사에 참여한 것을 본받아 친제를 시행하였는데, 그 방식은왕비가 궁궐 밖으로 나가지 않는 대신 경복궁의 강녕전 옛터에서 선잠제를거행했던 것이다. 친제를 시행할 때는 남성 관료가 준비과정을 시행하지만행사가 시작되면 여성들인 궁관의 도움을 받아 행사를 진행하였다. 왕비는관세를 한 후 집규(執圭)→국궁사배흥평신(鞠躬四拜興平身)→삼상향(三上 香)→작헌례(酌獻禮)→독축(讀祝)→국궁사배흥평신→예필(禮畢)의 과정을시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마친 후에 채상단으로 가서 친잠의 의식을 거행하였다. 이 의식은 완전히 여성만이 참여하는 의식으로 성종 대와 영조 대가 상당히 비슷한 방식으로 행해졌다. 성종 대는 왕비 채상위에서 동향→채상위 앞에나가 갈고리를 올림→왕비가 갈고리를 받아 뽕을 오조(五條)를 채취→내명부·외명부의 뽕 채취→예필→왕비 자리로 돌아오는 방식을 취하였다. 영조43년의 의식은 성종 대와 유사하게 시행되었지만 이때에는 혜빈과 왕세손빈이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들이 7잎의 뽕나무를 채취하는 의식이 설정되어 있었고, 또 잠모가 고두례를 시행하는 방식이 첨가되어 있었다. 성종대에는 왕비의 채상단이 북쪽에 설치되어 있고, 내명부와 외명부의 채상단이 별도로 설치되었지만 영조 대에는 혜빈과 왕세자빈의 채상단과 내명부와 외명부를 합친 내외명부단이 합쳐서 설치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잠단의 규모는 국조오례의에 사방 2장 3척, 높이는 2척 7촌으로 설정되어 있었으나 친잠의궤나 춘관통고에서는 경복궁에 설치한 선잠단을 방(方) 14척, 고(高) 2척으로 설정하여 원래 선잠단의 크기보다 약간의 축소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경복궁밖에 있는 선잠단을 새로 고치고 이를 바탕으로 경복궁에 선잠단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따로 경복궁에 왕비의 제단을 만들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대한예전에서도 영·정조대의 새로 바뀐 제단의 규모가 아니라 국조오례의의 사방 2장 3척, 높이 2척 7촌의 기록을 따랐던 것이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movement of the queen by examining the rituals of the queen's Seonjamdan and the rituals at Chaesangdan, which were carried out in the 8th year of King Seongjong and the 43rd year of King Yeongjo. And the size of Seonjamdan recorded in Gukjo-oryeui in the early Joseon period became smaller in Chungwantonggo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it was intended to examine the reason. In the 8th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after the bureaucratic rites were held at Seonjamdan, the queen's ritual act was held at Changdeokgung, but there was no relative of the queen here. It came out of the ceremony that the queen could not go out of the palace to hold the ceremony, and the bureaucrats conducted the entire ceremony. However, in the 43rd year of King Yeongjo, the queen's ancestral rite was carried out following the participation in ancestral rites through the MyoHyeonrye(廟見禮) of Jongmyo and Yeongnyeongjeon of Sukjong's era. When the king's personal sacrifice was held, a male official was in charge of the preparation process, but when the event started, the ceremony was conducted with the help of a female palace official. This ceremony was entirely attended by women, and was performed in a very similar way to the Seongjong and Yeongjo era. In particular,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the queen collected 5 types of mulberry leaves, Hyebin and Crown Princess collected 7 types, and Naimyungbu(내명부) and Oemyungbu(외명부) collected 9 types of mulberry. The ceremony of Yeongjodae was similar to that of Seongjongdae, but Hyebin and Crown Prince newly participated in the event, and a person named Jammo performed Go Du-rye to the queen was added. However, in 『Gukjo-oryeui』, the size of Seonjamdan was set to be 2 Jang(2장) and 3 cheok(3척) on all four sides and 2 Jang(2장) and 7 chon(7촌) in height. It is different by setting it to 14 cheok(14척) and 2 cheok(2척) high, but this is a reworked Seonjamdan outside Gyeongbokgung, not a rebuilt Seonjamdan. Therefore, in Daehanyeje, the contents of Gukjo-oryeui were written without paying attention to the Seonjamdan of Yeongjo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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