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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잠제 제기의 구성과 의미-영조 정해년 왕비친림작헌례의 제기를 중심으로-

The Composition and Significance of Seonjamje Ritual Vessels during the Joseon Dynasty -Focusing on the Ritual Vessels for the Queen’s Operating Jackhunrye in the Junghy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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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연구의 목표는 조선시대 선잠제의 정립과정 중 제기의 구성에 대해 살피고, 그 가운데서 영조 정해년 왕비친림작헌례의 제기와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선잠제는 태종대부터 본격적으로 다른 국가 변사들과 함께 논의되면서 제도적으로 정립되어 갔고, 『국조오례의』에 중사로 등재되었다. 선잠제는 왕비가 직접 내외명부를 거느리고 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중국에서도 친행과 섭행을 오가며 실행되었고, 조선에서는 섭행의 방식을 선택했다. 그래서 선잠제는 남성 관료인 유사가 왕이 내린 향과 축문을 받아 행하고 친잠은 왕비와 내외명부가 행하게 되었다. 즉 선잠의례는 두 가지 의례(제향-친잠)가 두 주체에 의해 각각 거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선잠제의 제기는 중사의 풍운뇌우 진설 방식을 따라 변, 두를 각각 10개씩 진설했다. 그리고 신위 수에 영향을 받는 제기들은 1개의 신위 수에 맞춰 진설하는 제기제도를 갖추었다. 1767년(영조 43) 정해년에 영조는 정순왕후가 직접 선잠제를 친행할 수 있도록 추진하였다. 이는 영조 이전까지 남성관료가 섭사해온 선잠제에 큰 변화를 예고하였고, 서릉씨를 위한 선잠제와 뽕잎을 따는 친잠을 왕비가 모두 주관하도록 하는 영조의 뜻은 정치적인 목적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악사 부족 등 예상치 못한 난관이 발생하자 영조는 ‘작헌례’라는 새로운 형식을 스스로 제안하였다. 작헌례는 조선초기부터 문선왕작헌례에서 시작된 의식으로, 작 1개, 변 1개, 두 1개, 희준 1개, 상준 1개로 이루어진 비교적 간소한 의례이지만 『국조오례의』에 등재된 중사급 제사로 여겨졌다. 조선후기 종묘, 영희전, 선원전, 산릉 등에서도 작헌례를 행하고, 작헌례 형식, 규모, 의미, 성격도 다양해졌다. 영조 정해년의 왕비친림작헌례는 문선왕작헌례의 제기 진설 방식과 규모를 따랐고, 이에 제기들과 제구들도 새롭게 제작되었다. 서릉씨의 신위 앞에 작 1개, 변 1개, 두 1개, 산뢰 1개가 진설되었다. 영조는 중사인 문선왕 작헌례라는 안정적이고 권위있는 제기 진설제도를 왕비친림선잠례에 도입하고, 작헌례용 제기를 특별히 주조하면서까지 정성껏 제례를 준비하게 한 영조의 뜻은 ‘친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왕비친림작헌례를 비롯한 작헌례의 제기는 해당 제향의 기본적인 속성(정제, 속제)과 다른 의례들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탄력적으로 변형되었고 할 수 있으며, 왕비친림작헌례에서 사용된 제기들은 중사의 성격을 가지는 작헌례라는 특수한 경우에 어떤 구성으로 제기를 진설했는지 알 수 있는 사례로써 의미가 있다. 이처럼 제기란 물질은 선잠제의 성격과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통로가 될 수 있다.

Abstract

The goal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omposition of ritual vessels during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Seonjamje in the Joseon Dynasty, and to reveal the ritual and meaning of the ritual of King Yeongjo Jeong Hae year. In the 43rd year of King Yeongjo's reign (1767), he promoted Queen Jeongsun to perform Seonjamje in person. This heralded a major change in the Seonjamje, which had been practiced by male officials, and his intention to have both the Seonjamje and the Cjinjam queen administer had an inherent political purpose. However, when unexpected difficulties such as a lack of musicians occurred, King Yeongjo proposed a new form called "Jakheonrye." Jakheonrye is a ritual that began with Munseonwang Jakheonrye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was considered a relatively simple ritual consisting of one Jak, one Byeon, two Du, one Heejun, and one Sangjun, but was considered a middle-level ritual listed in the Gukjo-Orye. In the late Joseon Dynasty, Jakheonrye was also held in Jongmyo, Yeonghuijeon, Seonwonjeon, and Sanneung, and the format, scale, meaning, and character of the Jakheonrye were diversified. King Yeongjo's reign of Jeong-year followed the method and scale of the ritual of King Munseon's construction of the ritual, and accordingly, ritual ceremonies and ritual utensils were newly produced. In front of the god of Seorung, one Jak, one Byeon, one Du, and one Saroi were prepared. As such, the material of Ritual vessels can be another channel for understanding the changes of Seonjamje by period and the nature of ritu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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