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강도(江都)시기 강화도의 주요 포구와 물자 유통
Main Ports and Material Logistics in Ganghwa-do at Era of Goryeo's Gwang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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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강화는 몽골과 고려가 전쟁을 벌였던 시기에 고려의 수도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섬이다. 고려 정부는 천도를 추진하면서 강화에 궁궐과 관청을 짓고, 제포-와포, 이포-초포 구간을 간척하여 둔전을 확보하였다. 이후에도 강도의 간척 사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갯벌이었던 지역이 농지로 변하고, 여러 지역에 포구가 등장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던 포구로는 梯浦와 甲串津이 있었다. 갑곶진의 위치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으나 제포의 위치는 명확치 않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제포의 위치를 간척사업과 함께 살핌으로써 현재보다 약간 더 북쪽인 삼간리 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사료와 발굴자료를 토대로 제포와 함께 간척지로 등장하는 瓦浦, 狸浦, 草浦, 그리고 삼별초가 진도로 떠날 때 경유한 仇浦 등의 위치를 비정하였다.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도로 천도한 후에도 왕실을 비롯한 지배층은 개경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풍족한 생활을 하였다. 송의 물품은 물론이고, 제주도의 말과 귤, 남부 지역에서 올라오는 각종 곡식과 식재료들을 풍족하게 공급받고 있었다. 이러한 화려한 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고려가 끝까지 몽골에게 조운로를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마도 해협에서 출수된 태안 마도3호선은 강도의 정부가 지방으로부터 어떤 물자들을 공급받았는지 잘 보여준다. 한편, 강도 시기 제주도는 남송과 일본의 물품을 교역하는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말과 감귤 등을 강도 정부에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제주에서 올라온 감굴과 공마는 왕실에서 공신과 권신들에게 상으로 하사되는 중요한 품목이었다. 훗날 몽골이 제주를 탐라총관부로 삼아 목마장을 설치한 것도 이미 전례가 있었던 셈이다. 강화도의 개간전 지형과 포구에 관한 연구는 이제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섰다고 판단된다. 지리학, 고고학, 역사학의 협조 하에 지금까지의 발굴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고려시대 강도의 구체적인 경관을 그려낸다면 강도 시기 강화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Abstract
Gwanghwa-do was an island which had played an instrument role as a capital city of Goryeo during the warfare between Mongolia and Goryeo. The government of Goryeo built the palace and administrative buildings at Gwanghwa-do while moving the capital city and acquired the fields for producing military rice be reclaiming the areas between Jaepo-Wapo and Epo-Chopo. The reclaiming projects were continued at Gwanghwa-do. Accordingly, the areas of mud flats had been transformed to agrarian lands and the ports were appeared in many points. The people at that time used the Jaepo and Gapgopjin for their ports. The location of Gapgopjin was well known, but the point of Jaepo was not sure. Accordingly, this article identified that it was likely to locate at the proximities of further north, Samganri than estimated now by looking into the point of Jaepo and reclaiming projects. In addition, based on the historic records and excavated records, this study compared and defined the positions of Wapo, Epo and Chopo which were appeared as reclaimed lands together with Jaepo and Gupo where Sambyeolcho visited at the departure to Jin-do. The ruling class of Gwanghwa enjoyed rich living as same as when they lived at Gaegyeong during the warfare with Mongolia for 39 years. They had supplies of horses and mandarin orange from Jeju and plentiful crops and food materials from southern parts of the country and goods from Song's territory as well. Holding the tax carrying route to the end by Goryeo against Mongolia made such luxurious living as available. The Mado ship #3 discovered recently at the proximity of Taean (District) display which supplies were supported from local districts to the government in Ganghwa-do. Jeju-do at the era of Ganghwa-do was a place for trading the goods between Southern Song and Japan and supplying the horses and mandarin orange to Ganghwa-do government. Later, the installation of horse farming sites at Jeju-do by Mongolia had the precedent cases. It is considered that the studies on the terrain and ports before reclaiming Ganghwa-do entered in the active step. The biggest tasks are to analyze the discovered records till today generally and depict the specific landscape of Gwanghwa-do in Goryeo Dynasty in combination of the geography, archaeology and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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