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일제 강점기 정치 ․ 사회적 변동과 목포화교 사회의 대응에 관한 연구 : 1924∼1945년을 중심으로

The Study on the Influence of Political and Social Upheaval on the Society of Overseas Chinese in Mokpo during the Latter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1925~1945)

0

조회

0

다운로드

8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고는 “개항기 및 일제 강점기 전기(前期, 1893~1924년) 목포화교의 경제․사회적 활동에 관한 연구(2018)”의 후속 연구로서 대상기간을 1924년-1945년으로 확장함은 물론 1924년 중국산 직물에 대한 고관세 부과정책, 1931년 만보산 사건과 만주사변, 1937년 중 일전쟁 등과 같은 정치․사회적 격변이 목포 화교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 다. 또한, 목포화교 사회가 이러한 변동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느냐를 파악하는데도 초점을 두었다. 먼저 1924년 일제가 중국산 비단제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 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1925 년부터 포목업계가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에 대해 목포화교는 일부 도매상들이 구축(驅逐)되 었지만 수입선(輸入先) 전환과 잡화 등 취급 품목의 다양화, 직물업계의 소매화(小賣化) 추진 등 자체적인 구조개편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갔다. 그 결과 단기적으로 충격을 흡수하 고 인구 규모면에서 목포화교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30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1931년 만보산 사건과 1937년 중일전쟁은 목포화교가 감내하기 어려 운 외생적 충격이었다. 만보산 사건은 상당수 화교들의 피신과 본국철수를 가져왔고 상업활 동을 크게 위축시켰다. 특히, 중일전쟁은 목포화교 경제를 침체국면에 빠트린 결정적인 사건이었고 핵심적인 구성원들이 이탈하여 화교사회의 기반이 무너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목포화교는 특유의 기업가 정신을 통해 불리한 정책변화에 대해서는 창조적으로 대응하였지만, 전쟁과 사회적 갈등과 같은 정치․사회적 격변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맞서기 힘들었다. 이 시기가 보여주는 역사적 시사점은 화교경제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하기 위해서 첫째, 국 제정치 환경과 거주국 사회의 안정 둘째, 화교-지역사회간 상호 소통과 이해증진 셋째, 거주 도시의 경제적 성장 가능성과 인프라 확보가 핵심 관건이라는 것이다.

Abstract

As a follow-up study of precedent research on economic and social activities of overseas chinese in Mokpo during the period of opening ports toward foreign countries and Japanese occupation(1893-1924), this paper aims to investigate the influence of political and social upheaval such as the high-tariff policy on Chinese textiles in 1924, the Manbosan incident in 1931 and the Sino-Japanese War on 1937 on the society of Overseas Chinese in Mokpo(Mokpo hwagyo) as well as extending the target period to 1925-1945. First, in 1924, the Japanese government implemented a policy to impose high tariffs on Chinese silk products, which hurt the industry from 1925. Mokpo Hwagyo responded actively through its own restructuring, including the conversion of import lines to Japan, diversification of handling items such as miscellaneous goods and the promotion of retailing in the textile industry. As a result, they absorbed short-term shock and enjoyed their heyday in terms of population size untill 1930. However, the ensuing 1931 Manbosan incident and the 1937 Sino-Japanese War were the exogeneous shock that Mokpo Hwagyo were unable to endure. The Manbosan incident brought about the evacuation and withdrawal of many Mokpo Hwagyo, while commercial activities shrank. In particular, the Sino-Japanese War was a decisive incident that plunged the Mokpo-Hwagyo's economy into a recession and led to the departure of key members of them, which led to the collapse of the foundation of the their society. Mokpo Hwagyo responded creatively to unfavorable policy changes through their unique entrepreneurship, but it was difficult to counter political and social upheaval such as war and social conflict. The historical implications of this period are that for the sustainable development of the Hwagyo's economy, the stability of international political environment and the living country's society, the promotion of mutual communication and understanding between the Hwagyo-regional communities, and the possibility of economic growth and securing infrastructure in the residential cities are essential conditions.

참고문헌 (78)

  1.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문서", 治安狀況, ~ (1938)
  2. "국가기록원 소장자료, 鮮內에 있는 支那人 排斥事件의 槪況", 관리번호 CJA0002328, 289~ (1932)
  3. "남조선과도정부편 조선통계연감(1943)" (1948)
  4. 김정섭, "木浦府史" (1930), 목포문화원
  5. "목포상공회의소 통계년보", ~ (1938)
  6. "木浦市史", ~ (1990)
  7. 김정섭, "木浦誌" (1914), 목포문화원
  8. "仁川府史", ~ (1933)
  9. "朝鮮總督府統計年報", ~ (1942)
  10. "조선총독부 소화5년 조선국세조사보고 도편 전라남도", ~ (1933)
  11. "조선은행 경제연감" (1949)
  12. 강진아, "동순태호" (2011), 경북대학출판부
  13. 강진아, "조선총독부의 화교 노동자 입국 관리와 중국 언론", 중국근현대사연구, (59), pp.101~131 (2013), 중국근현대사학회
  14. 京城商業會議所, "朝鮮における外國人の經濟力", 朝鮮經濟雜誌, 159 (1929)
  15. 京城商業會議所, "경제월보 4월호(196호)", ~ (1932)
  16. 고승제, "華僑對韓移民의 社會史的分析", 白山學報, (13) (1972)
  17. 김경학, "한국 화교의 초국가적 성격과 전망 - 광주지역 화교를 중심으로 -", 민족문화논총, (51), pp.191~226 (2012), 민족문화연구소
  18. 김승, "일제강점기 부산화교의 존재형태와 사회정치적 동향", 지역과 역사, (34), pp.213~277 (2014), 부경역사연구소
  19. 김영신, "日帝時期 在韓華僑(1910~1931)- 仁川地域 華僑를 중심으로", 인천학연구, 4 (2005)
  20. 김태웅, "日帝下 群山府 華僑의 存在形態와 活動樣相", 지방사와 지방문화, 13(2), pp.397~439 (2010), 역사문화학회[DOI]
  21. 김희신, "華僑, 華僑 네트워크와 駐韓使館 -청일전쟁 이후 한성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사연구, (89), pp.285~332 (2014), 중국사학회
  22. 盧冠群, "韓國華僑經濟" (1956), 海外出版社
  23. 노혜진, "한국 화교의 종족 정체성 형성 과정에 관한 연구: 광주지역 화교를 중심으로", 한국동북아논총, 17(4), pp.67~89 (2012), 한국동북아학회
  24. 문은정, "20세기 전반기 馬山地域 華僑의 이주와 정착", 대구사학, 68, pp.155~182 (2002), 대구사학회
  25. 박영석, "만보산 사건의 연구" (1978), 아시아문화사
  26. 박정현, "1927년 재만동포옹호동맹의 결성과 화교배척사건", 중국학보, (69), pp.105~128 (2014), 한국중국학회
  27. 한국화교(인천화교)의 경제활동 및 사회적 지위에 관한 연구, "박현옥", 인천발전연구원, ~, pp.IDI 연구보고서 2003-11 (2003)
  28. 배종태, "기업가정신의 확장과 활성화", 중소기업연구, 31(1), pp.109~128 (2009), 한국중소기업학회
  29. 小田內通敏, "朝鮮に 於ける 支那人の 經濟的勢力", 東洋講座, ~ (1925)
  30. 송승석, "‘한국화교’ 연구의 현황과 미래 ― 동아시아 구역 내 ‘한국화교’ 연구를 중심으로", 중국현대문학, (55), pp.163~200 (2010),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31. 石源華, "中國南京國民政府外交部公報: 大韓民國關聯史料 上" (1995), 高句麗
  32. 양세영, "개항기 및 일제 강점기 전기(前期, 1893~1924년) 목포화교의경제․사회적 활동에 관한 연구", 지방사와 지방문화, 21(2), pp.71~129 (2018), 역사문화학회[DOI]
  33. 楊昭全, "朝鮮華僑史", ~ (1991)
  34. 楊韻平, "汪政權與朝鮮華僑(1940∽1945)-東亞秩序之一硏究" (2007), 稻鄕出版社
  35. 양필승,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 (2004), 삼성경제연구소
  36. 왕은미, "동아시아 현대사 속의 한국화교" (2013), 학고방
  37. 윤상원, "한국 역사학계의 만보산사건 연구동향과 과제", 한국문학연구, (51), pp.7~38 (2016), 한국문학연구소[DOI]
  38. 이덕훈, "화교기업의 기업가적 특성과 문화", 생산성논집, 11(2) (1997)
  39. 이옥련, "근대 한국 화교사회의 형성과 전개", 박사, pp.2005
  40. 이은상, "20세기 전반(1912∼1936) 식민지 조선의 신의주화교", 중국근현대사연구, (70), pp.53~88 (2016), 중국근현대사학회
  41. 이은상, "원산화교와 배화폭동(排華暴動)", 중국근현대사연구, (72), pp.91~117 (2016), 중국근현대사학회
  42. 이재령, "南京國民政府時期 中國의 韓國認識 ―萬寶山事件에 관한 輿論動向을 중심으로 ―", 중국사연구, (31), pp.367~399 (2004), 중국사학회
  43. 이정희, "20세기 전반기 대구지역 화교의 경제적 활동 (1905~1955년)", 대구사학, 80, pp.71~102 (2005), 대구사학회
  44. 이정희, "植民地朝鮮にお ける華僑経済に関する研究(1905年-1930年)-朝中貿易を中心に", 京都創成大学紀要, 5(1) (2005)
  45. 이정희, "중일전쟁과 조선화교―조선의 화교소학교를 중심으로―", 중국근현대사연구, (35), pp.107~129 (2007), 중국근현대사학회
  46. 이정희, "1927년 조선화교배척사건의 경위와 실태 ― 인천화교배척사건을 중심으로 ―", 동양사학연구, (135), pp.283~319 (2016), 동양사학회
  47. 이정희, "강원도 화교사회의 형성과 변화: 1900년대∼1940년대를 중심으로", 한림일본학 (구 한림일본학연구), (30), pp.110~138 (2017), 일본학연구소[DOI]
  48. 이정희, "중일전쟁 시기 조선화교의 항일활동", 동양사학연구, (139), pp.337~370 (2017), 동양사학회[DOI]
  49. 이정희, "조선화교의 중화요리점 연구 — 1880년대~1920년대를 중심으로",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14), pp.61~96 (2017), 한국사회사학회[DOI]
  50. 이정희, "조선 화교의 성당건축 시공 활동(1880년대∼1930년대) −서울과 대구를 중심으로−", 교회사연구, (51), pp.43~83 (2017), (재)한국교회사연구소
  51. 이정희, "이발소와 양복점으로 본 조선화교의 실태 — 1890년대~1940년대를 중심으로",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16), pp.19~52 (2017), 한국사회사학회[DOI]
  52. 이정희, "한반도 화교사" (2018), 동아시아
  53. 이정희, "근대 인천화교의 사회와 경제 –인천화교협회 소장자료를 중심으로" (2015), 學古房
  54. 이창호, "한국 화교(華僑)의 사회적 지위와 관계의 공간: 인천 화교의 관시(關係)와 후이(會)를 중심으로", 비교문화연구, 14(1), pp.75~122 (2008), 비교문화연구소
  55. 이화승, "전주 화교사회를 통해 본 한국 화교의 고찰", 사림, (26), pp.263~284 (2006), 수선사학회
  56. 장세윤, "만보산 사건 전후 시기 인천 시민과 화교의 동향", 인천학연구, 2(1) (2003)
  57. 조선은행 조사부, "경제년감" (1949)
  58. 東亞經濟時報社, "朝鮮銀行會社要錄", ~ (1925)
  59. 조선총독부, "朝鮮に 於ける 支那人", ~ (1924)
  60. 조세현, "식민지도시 부산의 ‘시나마찌(支那町)’와 화교들", 역사와경계, (87), pp.153~185 (2013), 부산경남사학회
  61. 조영윤, "1920~1930년대 빈민실업문제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대응과 중국인 노동자", 한국민족운동사연구, (75), pp.173~218 (2013), 한국민족운동사학회
  62. 진유광, "중국인 디아스포라" (2012), 한국학술정보
  63. 華僑志編纂委員會, "韓國華僑志", ~ (1958)
  64. "동아일보 1927년 2월 3일자, 1927년 3월 1일자, 1927년 12월 19일자, 1928년 8월 15일자, 1931년 7월 6일자, 1931년 7월 8일자, 1931년 7월 12일자, 1931년 12월 27일자, 1931년 12월 27일자, 1937년 9월 14일자", ~ (1937)
  65. "매일신보, 1926년 7월 18일자, 1940년 1월 6일자", ~ (1940)
  66. "부산일보, 1940년 3월 10일자, 1940년 3월 31일자", ~ (1940)
  67. "아주경제, 2017년 9월 14일자", ~ (2017)
  68. "오마이뉴스, 2011년 5월 12일자", ~ (2011)
  69. "조선신문, 1931년 7월 9일자", ~ (1931)
  70. "조선일보, 1925년 9월 5일자, 1928년 4월 10일자, 1931년 6월 13일자", ~ (1931)
  71. "중외일보, 1929년 10월 9일자", ~ (1929)
  72. "왕○○ (원적: 산동성 래양현, 목포화교 3세로서 대를 이어 중국식당 경영)", ~
  73. "위○○ (원적: 산동성 봉래현, 부친이 중국식당 운영, 한의사로서 목포화교협회 회장)", ~
  74. "장○○ (원적: 산동성 황현, 부친이 인의관의 마지막 주인, 통역활동)", ~
  75. "손○○ (원적: 산동성 복산현, 일제말기 목포화교 지도자였던 손성양의 조카)", ~
  76. "왕○○ (원적: 산동성 서하현, 광주화교 2세, 광주전남화교협회 총무)", ~
  77. "허○○ (원적: 산동성 황현, 제주 거주 화교 2세)", ~
  78. "오○○ (목포 현지 국내인으로 지역연구자, 1932년생으로 일제강점기 화교에 대한 객관적 증언)", ~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