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극 단체 ‘극예술연구회(1931.7.8~1938.3)’의 운영 구조와 제작 체제 및 구성원에 관한 고찰: 당대의 언론 자료 및 사료에 기반하여
A Study of the Operational Structure, Production System and Members of the Shingeuk Troupe ‘Geukyesulyeonguhoe(1931.7.8~1938.3)’: Based on the Press Mentions and Historical Documents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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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신극 단체 극예술연구회(1931.7.8~1938.3, 이하 ‘극연’)의 운영 제도와 조직 구성(원) 및 그 추이에 따른 연출 체제와 제작 체계를 고찰하고 당시에 형성된 제작 판도를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연구 결과, 극연은 운영상 동인제(1931.7.8~1932.12)로 시작하여 회원제(1933.1~1938.3)로 전환하였고 조직의 구조는 그 동안 네 차례 이상 변경하였다. 특히 연출과 제작을 관할한 부처는 사업부(동인제 시기)에서 실천부(회원제 전반기)로 개정한 후에 다시 연출부(회원제 후반기)로 개편하는 도정을 거쳤다. 그 목적은 전문적 극단 체제를 갖추며 ‘우리 신극’을 상연하기 위함이었다. 결과적으로, 극연은 회원제 후반기(1936.7~1938.3)에 조직체를 ‘총무국과 산하의 연출부, 문예부, 미술부, 경리부 및 산하의 반’의 구조로 수립하였다. 그 중 연기 부문은 연출부 산하의 연기반으로 두어 당시까지 연기 체계가 미약한 실정을 노정하였다. 그 후 극연은 자금난 해소를 위해 영화부(1937.6~1938.3)를 추가로 특설하기도 했다. 극연은 첫 시연부터 ‘연출(자)와 다른 직무의 무대감독’을 기용하면서 연출(자)의 독립성과 제작 부문의 분업화를 도모하였다. 그 후 연출 부문은 ‘연출자, 연출보, 무대감독, 무대감독 조수, 프롬프터’의 구성(원) 체제를 갖추었다. 그 가운데 동인(회원)은 무대감독 또는 연출보를 거쳐서 연출자로 데뷔하는 경로를 이루었다. 그러나 연출자와 연출의 조력자들 간에 직무 권한과 경계는 확립되지 않았다. 따라서 실무적 분업화는 실현되지 않았고 무대감독을 비롯한 조력자들은 연출자의 지시를 추종하는 입장에 있었다. 무대미술 부문은 장치, 조명, 효과, 의상, 대․소도구 등 제반 분야에서 구체적인 개인에게 구체적인 책임을 맡기는 분업 체제를 수립하였다. 특히 장치와 조명 부문은 외부의 실기 전문가를 영입하는 노력의 결과로 해당 분야의 전공자와 숙련자가 전담하는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무대 부문에서도 분업 체제와 그 실천 사이에 적잖은 간극이 실재하였다.
Abstract
This study aims not only to examine the operational system, organization composition and members of the Shingeuk troupe Geukyesulyeonguhoe (hereinafter referred to as ‘Geukyeon’) but also to discuss the formation process of both directing and production systems according to the trend of the Geukyeon, thereby elucidating the landscape in production of plays at that time. As a result of the study, Geukyeon started with the coterie system (1931.7.8~1932.12), which shares the responsibilities and obligations by all members, in its operational scheme and then switched to a membership system(1933.1~1938.3), the organization structure was changed over five times. The department in charge of directing and production, in particular, went through a revision process from the Business department (during the period of coterie system) to the Practice department (during the period of membership system), then changed back to the Directing department. The purpose of such changes was to equip with a professional theater group system and to perform the Shingeuk. The organization structure of operation in Geukyeon was established with ‘General affairs bureau and its sub-departments including Directing department, Literary department, Stage Arts department, and Accounting department(1936.7~1936.6). Moreover, each department had several sections. Under such a structural system, the ‘Movie Department (1937.6~1938.3)’ was newly established as a special case in order to address the financial pressures. However, it was revealed that the acting system in terms of the acting domain was still weak position because of staying at ‘Acting section’ under the Directing department. Geukyeon introduced the ‘formation system of both stage-director and stage-management & -manager’ in the first demonstration of the coterie system period. This was a pioneering attempt that drives the division of labor in theater production together with securing the independence of directing (or a director). Afterward, the directing system of Geukyeon consisted of ‘stage-director, assistant stage-director, stage-manager & -management, stage-manager & -management assistant, and prompter’, and most of founding members and members typically took a path to debut as a stage-director after passing through stage-manager & -management or assistant stage-director. However, no boundary and authority of tasks have been established between stage-director and their assistants until the Geukyeon was dispersed. Accordingly, the division of their labors was not implemented and the assistants of a stage-director were just in a position to follow the instruction of a stage-director. In the case of stage production in Geukyeon, a division of labor system in which each individual takes responsibility in all domains such as devices, lighting, effects, costumes, and small and medium tools was established. In particular, as a result of efforts to recruit practical experts from outside in the device and lighting domains, a tendency of the ‘dedicated experts and skilled people’ was very prominent. It is, however, still questionable to what extent the collaboration system in each domain has been implemented and how much the effectiveness has been achieved. This is a task to be discussed based on the performance cases in a future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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