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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新民)의 신민(臣民) - 식민지의 여론시대와 관제 매체

Sinmin(New People) of Sinmin(People of Empe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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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1925년 5월 창간되어 1933년까지 발행되었던 식민지 조선의 관제 매체 『신민』은, 1920년대 중반 이후 유일하게 신문지법에 의해 발행되었던 잡지였다. 여론의 시대를 준비한 조선총독부의 『신민』 기획은, 제국과 조선총독부의 체취를 은폐하면서 식민지 여론 지형의 취약한 고리를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른바 ‘지방 공민’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활’이라는 당대의 요청을 ‘생계’로 전유하여 사시(社是)로 삼음으로써 사회적 논점을 정치에서 경제로, 국가에서 개인으로, 이념에서 생활로 회향시켰다. 이로써 식민지의 삶이 역전되고 저층으로부터의 ‘풍경 전회’가 창출되었다. 『신민』의 편집체제도 『신민』의 기획 취지와 연동했다. 적대적 맞수였던 『개벽』의 편집체제를 적극 차용하면서도 조선총독부의 네트워크와 ‘지방 공민’의 관료적 성격에 맞게 변형시켰다. 또 여론의 형성에 발맞추어 설문과 순례의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도입시켰다. 여론 속에서 제국의 논리를 관철시켜야만 했던 『신민』이 시대적 압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사회주의는 비판의 대상으로서만 소개되었다. 『신민』이 필요로 했던 것은 체제 내적 여론에 한정되기 때문이며, 설문/순례의 텍스트가 가진 균열적 파괴력이 논설의 우위성을 넘지 못하도록 조절했던 것도 이와 관련된다. 그렇게 ‘계몽여론’이라는 배합적 텍스트는 식민지민의 요구와 제국의 의지 사이에 착압되어 출현했다. 『신민』은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식민지에서의 여론을 주도하고자 했던 친제국적 근대주의의 산물이었다. 『신민』은 제국의 논리를 식민지에 뿌리고자 했고, 동시에 식민지의 여론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통제하는 미디어 『신민』은 총독부의 준기관지로서의 제국주의적 ‘계몽’ 책무와 식민지민들의 ‘여론’을 거스르기 어려운 미디어로서의 위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려야 했던 텍스트가 되었다.

Abstract

Sinmin was a government-manufactured media which was first published on May, 1925 and continued to be published until 1993.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realized that the period of public opinion was starting. To response to this, it made the Sinmin. The main readers of Sinmin was officials. And it dealt with the problems concerning public welfare. It turned social issue about the politics into about the economy. And it also changed ideology into livelihood, government into person. The system of editing moved in line with the purpose of plan. It accepted the editing system of the Gaebyeok which was the hostile rival to Sinmin, and changed it to adapt to the network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local officials. And thus, enlightenment of public opinion, which was combined text was appeared by collecting the requirement of colony people and intention of an empire. Sinmin that wanted to lead the public opinion in the incipient colony was the product of imperialism. Sinmin was intended not only to plant the imperialism in the colony but also to participate in the process of forming public opinion. So controlling media Sinmin became a text fluctuating continuously as a quasi-government magazine between the obligation of enlightenment and the role of media which should not disregard the public opinion.

참고문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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