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陸과 海洋을 품은 高句麗 佛敎彫刻
An Image of Buddha Sculpture of Koguryo which were Harbored the Continent and the Oc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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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지금까지 고구려 불교조각은 남한, 북한, 중국에서 출토되었다. 연가7년명 금동상을 제외한 남한에서 출토된 기타 불상은 고구려 영토 혹은 고구려 세력권 안에서 발견되었다고 추론된다. 북한과 중국에서는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과 평양, 특히 평양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북한과 중국에서의 불상은 대부분 불교 사원지에서 출토되었으며 당시 도성과의 관계도 서로 밀접하다. 고구려 불상의 재질은 금동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소조, 석조, 목조도 사용되었다. 대부분 크기가 작은 예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돌로 조성된 예가 희귀한 것이 특이한 사실이다. 또한 청암리 토성 부근에서 출토된 금동관의 주인은 2구의 목조 보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존하는 고구려 불상의 년대는 6세기대에 집중되었으며, 4, 5, 7세기대에 해당되는 작품은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 불교문화가 가장 절정을 이루었던 6세기대의 사회상과 서로 부합되는 내용이다. 현존하는 불교조각상에 반영된 당시 신앙으로는 천불, 미륵, 무량수, 법화사상이 확인된다. 고구려 불교조각상의 독자성과 우수성에 대해서는 우선 고구려 불교조각의 명문에 사용된 고구려 연호의 존재에서 고구려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면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소금동불상과 청암리 토성 출토 금동관의 주조기술의 우수성은 기타 다른 금동, 철 제품의 선진성과 더불어 고구려의 우수한 금속주조기술을 대변해 준다. 특히 이러한 주조기술은 백제, 신라는 물론 중국 산동지역으로까지 그 영향력을 암시하고 있어 고구려 불교조각 중 금동불상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현존하는 고구려 불상은 조각양식, 사상적인 면에서 중국 북조, 남조와 동시에 교류관계를 형성하였다. 이는 고구려가 대륙과 해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외 교류관계를 유지하였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고구려 문화의 포용성을 대변해 준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인들은 중국으로의 이주와 정착생활을 통해 중국 내에서도 불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당시 중국의 수도에서 새로운 조각양식을 형성하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변두리 지역에서는 고구려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독특한 조각양식을 이룩하기도 하였다.
Abstract
Image of Buddha sculptures of Koguryo were excavated in South korea, North korea and China, as yet. Most image of Buddha sculptures of Koguryo except Gilt bronze standing buddha with date inscription of 7th Yeonga year were found in Koguryo’s sphere of influence or domain of Koguryo. In North korea and China, image of Buddha sculptures of Koguryo in Jian and Pyeongyang- especially in Pyeongyang-where were the capital cities of Koguryo, were excavated concentrically. Most image of Buddha sculptures of North korea and China were excavated in Buddhist temples, and they were closely connected with a capital city. Most of image of Buddha sculptures of Koguryo were made from gilt bronze, others were made from molding, stone or wood. Small things hold a large majority, and stone construction were rare. The gilt bronze crown which were excavated around Chengamli(淸巖里)mud castle were likely to own by two Buddhist saints. Existing image of Buddha sculptures of Koguryo centered on 6C, and works on 4,5,7C were nothing much relatively. These corresponds with a social aspect on 6C that Buddhist culture were gained the summit after transferimg of the capital to Pyeongyang. I identify faith at that time - one thousand Buddha, Maitreya, constant life and Buddhist sermon - through existing image of Buddha sculptures. I confirmed that independence and autonomy of Koguryo from the name of an era of Koguryo which were used on image of Buddha sculptures. Also, I could recognize superiority of casting technique by small gilt bronze image of Buddha sculptures and gilt bronze crown from Chengamli(淸巖里) mud castle. Furthermore those were spoken for advanced casting technique with other gilt bronze or iron products. Specially, The casting technique of Koguryo showed that Buddhist sculpture of gilt bronze occupied the important situation and influence to Baekje, Silla and Sandong-province of China. Image of Buddha sculptures of Koguryo formed exchange relation with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of China by sculpture style and aspects. These are said that Koguryo kept exchange relation that were applied both the continent and the ocean, and those are also said that Koguryo had culture comprehension. At the conclusion, Koguryo people were participated on Buddhist service in China through emigration and settlement. They formed new sculpture style in capital of China, also they created unique sculpture style for keeping traditional culture of Koguryo on the outskirts of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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