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북조시대 불교조각을 통해 본 고구려 延嘉 7년명 금동여래입상
Gilt-bronze Standing Buddha Image with Inscription of 'the Seventh Yeonga Year' of Goguryeo and Chinese Buddhist Sculptures of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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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는 1963년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된 이래 지난 반세기 동안 다각적으로 논의되었던 편년, 명문해석, 양식적 특징 등에 관한 연구성과를 재검토하고 새로운 자료들을 이용하여 연가명 불상과 관련된 기존논의의 모호한 점을 밝혀 보고자 하였다. 먼저, 중국에서 새롭게 출토된 남북조시대 불상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지금까지 제기되었던 여러 편년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진 479년설과 539년설 편년의 개연성을 검토하였다. 연가명 불상에는 중국 南朝 불상과 여기에서 영향을 받은 북위 불교조각의 여러 요소가 다양하게 혼재되어 ‘고구려 불상’ 특유의 양식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되는데 相好, 착의형식, 수인, 옷주름 표현 등, 각각의 요소를 개별적으로 살펴본 결과, 불상의 조성시기는 520년 이전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 것으로 사료되어 명문에 새겨진 ‘延嘉 7년 己未’는 539년으로 편년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해는 安原王 10년으로 그가 재위 3년(533)이 되는 해에 자신의 아들 平成을 태자로 세우고 이를 국가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延嘉’를 연호로 제정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연가명 불상과 관련된 여러 문제 가운데 연가명 불상의 출토지가 절터가 아닌 점, 舟形擧身光背가 앞으로 휘어져있고 수평으로 파손된 점, 석판아래 조성된 석실에서 발견된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이 상은 광배가 파손된 뒤에 폐기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광배가 펴진 상태라면 고구려척(35.5)으로 반 척 정도가 되는 불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樂良東寺의 천불조성 불사에 일정하게 정해진 반 척 크기의 불상이 주조되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천불이 조성되었던 낙양동사의 위치에 대해서는 대동강 상류의 청암리사지와 상오리사지를 꼽을 수 있는데, 평양성이었던 청암리토성의 동쪽에 위치했던 청암리사지는 ‘금강사지’로 알려져 있으므로 ‘동사’가 ‘금강사’의 별칭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여기서 동남쪽으로 2km 떨어진 상오리사지에서 ‘동’자명 印刻瓦가 출토된 점에서 이 사지가 東寺일 가능성 또한 생각할 수 있다. 연가명 불상의 존명인 ‘인현의불’은 『현겁경』에서 언급된 현겁천불 가운데 제 29번째 불상이라는 것이 이미 논의된 바 있는데, 이 경전은 오호십육시대부터 널리 유행하였고 관불수행과 천불조성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어 낙양동사에서 천불 조성불사를 주도했던 승연과 그의 사도 40인은 『현겁경』을 소의경전으로 관불수행과 육바라밀을 통한 실천적 대승불교 신앙을 지향했던 불교도들이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investigates the gilt-bronze standing Buddha image with the inscription, ’the seventh year of Yeonga(延嘉)’, by examining academic achievements established for half a century since the statue was first found in 1963, analyzing its inscription and comparing the style and iconography of this image with those of newly discovered Chinese Buddhist images of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The Buddha image contains various stylistic features of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from the late fifth century to the early sixth century that seem to have formed the Goguryeo style, and is inspected to have most likely been made after 520 CE. As ‘the seventh year of Yoenga ‘gimi(己未)’ year’ corresponds to 539, it is assumed that King Anwon(安原王, r.531-545) in 533 CE established the name ‘Yoenga’ to commemorate the crowning of his son, prince Pyeongseong(平成). When the Buddha image was unearthed from under a rectangular stone panel at a mountainside in Uiryeong, South Gyeongsang Province, its halo was bent forward and broken horizontally, which indicates that this image had been discarded as damaged or broken images could not be used for worship. Before any damages to the halo, the full size of the image would have been about 17.7cm, about one half of Goguryeo cheok(尺, 35.5cm). It can be presumed that all the thousand Buddha images were cast in a size identical to this Buddha image, at one half Goguryeo cheok, which was easy to measure by sculptors. The inscription is on the backside of the halo, indicating that this image was ‘Inhyeonuibul’ (Inhyeonui Buddha, 因現義佛), the 29th of the thousand Buddha images distributed by 40 members of Buddhists at ‘Dongsa’(The East Temple, 東寺) in Nakyang(樂良, Pyongyang), the capital of Goguryeo. The name of Buddha, ‘Inheonyibul’ appears only in Hyeongeopgyeong [賢劫經, Bhadrakalpika Sutra], one of the early Mahayana sutras translated in Chinese by Dharmarakṣa in 300CE. This sutra became very popular in China from the fourth century and provided the theoretical basis for meditation practice and execution of the thousand Buddha images on the wall of cave temples in China. It is therefore fair to assume that this sutra also contributed considerable impact on religious practice and worship of one thousand Buddhas by the Buddhists in Goguryeo in the six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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