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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의 평양 인식 변화와 활용 -고조선ㆍ고구려사 연구 추이와 관련하여-

Changes in the North Korean Government's Perception of Pyongyang and Its Use -In Relation to the Research Trend of Gojoseon History and Goguryeo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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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국가에서 수도가 지니는 위상은 단순히 행정적 중심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사회주의 정권에서는 여러 가지 ‘상징’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을 계획하고 도시 공간을 조직하는 데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 해방 전후 평양에 대한 인식은 ‘고조선ㆍ고구려의 옛 도읍’이라는 역사적 자긍심과 ‘중국의 식민지’라는 타율적 정체성이 교차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 정권은 평양의 재건과정에서 고구려에 초점을 맞춰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427년을 ‘평양시 창건’의 시점으로 삼아, 1957년 ‘평양시 창건 1,530주년’ 관련 행사를 대대적으로 기획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대동강 유역을 개척하면서 ‘동방의 강국’으로 성장한 고구려의 모습에 현재의 북한 정권을 투영하여 홍보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한편, 이후 19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평양이 지니는 역사적 정체성은 ‘인류문명 발상지’, ‘우리 민족과 국가의 발원지’라는 점으로 모아졌다. 그것은 1980년대 이후 북한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화되고, 더욱이 민족의 문화적인 측면 뿐 아니라 혈연적인 측면을 강조하게 되는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특히 ‘단군릉’의 발굴과 복원은 북한 정권이 의도를 가장 잘 충족시켜주는 이벤트였다. 이후 평양은 더욱 성지화되며 주체사상과 조선민족제일주의를 선전하는 데에 활용되었다.

Abstract

A capital of nation means more than just an administrative center. North Korean government has reconstituted the identity of Pyongyang to match the government's purpose since the liberation. There were two different types of perception of Pyongyang at the time of the liberation. One is the historical pride of “the former capital of Gojoseon and Goguryeo”, and the other is the heteronomous identity of the “Chinese colony”. North Korean government formed Pyongyang's identity focusing on Goguryeo during the rebuilding process of the city after the Korean War. A typical example is that the planning of the “1,530th anniversary celebration of the founding of Pyongyang” on a grand scale in 1957, by taking 427 when King Jangsu moves the capital to Pyongyang as the starting point of the “foundation of Pyongyang”. Their intention was to promote the government by projecting the current North Korean government onto Goguryeo that had grown into a “power of the East” while developing the Taedong River basin. Starting in the early 1990s, however, Pyongyang's historical identity began to focus on “the cradle of human civilization” and “the cradle of nation and state”. It results from the strengthening of North Korea's nationalistic tendencies since the 1980s, as well as from the change that emphasizes not only the cultural aspect of the nation, but also the aspect of kinship. In particular, the excavation and restoration of Mausoleum of Tangun was the event that most closely matches the purpose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 Since then, Pyongyang has become more sacred, and was used to promote the Juche idea and Joseon nation-first prin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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