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문예잡지에서 비평 담론의 형성과 분화
Literary magazine by Korean students in Japan and the making and diversifying of the discourse of Criticism ―focusing on Cha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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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창조는 한국 최초의 동인지 문예잡지이다. 그래서인지 창조는 각 장르별 작품이 생산한 기원성에 그 가치가 두어졌다. 예컨대 이 글의 관심인 비평 분야에서는 작품론과 비평 논쟁에 획기적 역할을 담당한 김동인과 염상섭의 평론이 주로 조명된다. 그러나 이 글은 창조의 동인들이 ‘근대’를 학습 중이던 유학생이자 예비 문인이었다는 점을 각별히 기억한다. 이것은 그들의 문학적 자의식과 비평 역량의 축적 과정, 그리고 학습된 근대문학을 내면화하는 방법을 계보학적으로 구성하기 위해서이다. 비평 역시 이런 자장을 벗어나지 않은 채, 비평 형식의 다양성과 비평의 근대성을 창조하고 성숙시켜 나간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첫째, 창조 비평의 기원적 저변과 전개의 추동력, 둘째, 창조 비평의 근대성과 문학 장(場)에 개입, 교섭하는 양상을 주요 의제로 설정했다. 이를 전제로, 2장에서는 창조 비평의 기원으로서 학지광에 실린 동인들의 글 및 창조의 도쿄 중심주의가 갖는 의미를 검토했다. 이를 통해 창조의 미학 이념과 사상, 창작방법의 기원을 살펴보고, 또 도쿄가 창조의 권위와 동인들의 역량 강화, 그들의 근대성 학습과 실천, 잡지의 생산과 유통에 기여한 면모를 확인하였다. 이것들은 창조 비평의 공공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진화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3장에서는 먼저 김동인과 염상섭이 벌인 비평 논쟁의 의미를 검토했다. 비평이 갖추어야 할 공준(公準)과 보다 올바른 대(對) 작가적/작품적 태도의 필요성을 널리 제기한 성과와 함께, 실제비평의 성숙이나 문학 장(場)의 지평 확대로 연결되지 못한 단처(短處), 비유컨대 ‘영향의 불안’을 극대화시키지 못한 소극성을 주목했다. 다음으로, 비평 논쟁과 깊이 연관된 여타의 동인들, 그 중에서도 주요한의 산문과 김찬영의 비평이 제기한 문제를 새롭게 다루었다. 요한은 비평의 전제로서 ‘위대한 작품’의 생산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탁월한 외국작품의 번역을 주장했다. 이것은 타자성의 내면화 혹은 자아화가 새로운 주체와 문화의 창조에 크게 기여한다는 대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당시 소통되던 비평방법론을 소개한 김찬영의 비평은 조선에서 불가능했던 강단비평의 서글픈 운명과, 1920년대 중반 이후 비평과 저널리즘의 본격적 결합의 밑자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Abstract
創造は韓国で初めて作られる同人の文藝雜誌である。そのために硏究者たちは創造の價値をそれに揭載された最初の自由詩とか批評などに留める。例えば本論文の注目を浴びる批評では作品論と批評論争に劃期的な役割を担当した金東仁と廉想涉の評論に照明が照らされる。しかし、本論文は創造の同人たちが‘近代’を学んでいる留學生であり豫備文人であったことを特に覚える。これは彼らの文学的自意識と批評の力量を養うし近代文学を內面化する仕方を系譜學的に構成するためである。やはり批評もこの磁場をはずれてなく、その形式の多樣性と批評の近代性などを産み出したり伸ばしたりする。この観点で筆者は第一、創造の批評の起源的な低邊と展開の力と、第二、創造の批評の近代性に関する意味、また文學の場に介入してそれと話し合う樣相を主要な議題に定めた。 第2章では創造の批評の起源として學知光に載せる同人たちの文章と創造の東京中心主義が取る意味を檢討した。これを通して創造の美學理念と思想、創作方法の起源を探った。ともに、東京が創造の權威と同人たちの力量の强化、彼たちの近代性についる學習および實踐、雜誌の生産と流通などを手伝う樣相を確認した。この要素たちは創造の批評の公共性がどの様に造られて發展するのかをよく見せてくれる。 第3章ではまず金東仁と廉想涉との批評論爭が持った意味を檢討した。批評の公準ともっと適切な對作家的/作品的態度の必要性をひろく提起することがその成果である。しかし、實際批評の成熟とか文學の場についる地平の擴大を果たしてなかった。次に、批評論爭と関わって朱耀翰の散文および金瓚永の批評が起った問題を改めて扱った。耀翰は批評の前提として́́́́̀偉大な作品の生産を强調して、そのために優れている 外國作品の飜譯を主張した。金瓚永は當時に日本の大学とか文壇で教えられていた批評方法論を紹介した。この評論は当時の朝鮮に出来なかった講壇批評の悲しい運命と、1920年代中期以来批評とジャーナリズムとの本格的な結合の背景とわけを前もってうかがってくれる。
참고문헌 (1)
- "김동인전집 16-조선근대소설고 외" (1988), 조선일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