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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외교경쟁과 ‘6.23선언’

Inter-Korean Diplomatic Competition and the June 23 Decla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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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6.23선언이 실제와 괴리된 기존 정책의 현실화이자 전향적 선언과 냉전적 태도가 불편하기 결합된 조치였다고 본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7.4공동성명 채택과 수차례에 걸친 남북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상호불신의 골은 여전히 깊었으며 1973년 초부터는 남북관계도 교착상태에빠져 있었다. 그렇다고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결정그룹이 교착된남북관계를 돌파하거나 공산권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태도 변화와 정책 의지를 갖고 동 선언을 발표했다고 보기도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이와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외교경쟁의 위기상황에서 나온 6.23선언이 한국외교의 체질 개선의 계기가 되었고, 중장기적으로는한국 외교정책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6.23선언이한국외교에 있어서 특수 사례라기보다는 수동전환의 일반 사례의 하나로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6.23선언이 단순히 나중 1980년대 정책적 전환의 틀로 작용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6.23선언을 전후한 잇따른 외교실패의 경험과 반성 위에 한국 정부의 외교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의 축적으로 1980년대 정책 전환이 가능했다.

Abstract

There is a dispute over whether the June 23 Declaration, which was announced by South Korea in 1973, was an enterprising measure aimed at broadening the playing field for South Korean diplomacy within detente, or a defensive measure that was simply a reaction to North Korea’s diplomatic offensive at the time. In this article I argue that the June 23 Declaration awkwardly combined a move to materialize existing policy - which was divorced from reality - and that of an ‘enterprising statement’ with a ‘Cold War attitude.’ South Korea chose to make its ‘own policies based more on reality’ because it was difficult to continue its original, unrealistic foreign policy goal of isolating North Korea from the United Nations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Ultimately, the June 23 Declaration was not aimed at driving forward diplomacy with the Communist bloc. Rather, it originated from a need to ‘correct’ South Korea’s inflexible foreign policy, which prioritized opposition to Communism; provided needed strategic flexibility; justified already established facts that were in opposition to or outside of South Korea’s control; and provided a way to strengthen South Korea’s image internation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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