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동아일보』의 중국 인식 – 계몽과 혁명,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시각의 부침과 교차
Dong-A Ilbo’s View on China in the 1920’s – Enlightenment, Revolution, and the Intersection of Colonialism and Post-Colonialism
1
조회
0
다운로드
8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1920년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중국의 혁명은 제국주의 인식 체계가 구축한 식민주의적 세계관을 일거에 전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중국은 현재의 동아시아 정치 지형을 결정할 분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따라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사태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설과 연재 기사들이 신문의 지면을 차지했다. 당시 가장 유력한 매체였던 『동아일보』에는 사회주의 혁명의 관점에서 일제가 창출한 식민주의적 중국관까지, 중국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중국과 조선을 바로 동일시하는 시각이었다. 1920년대 초반 동아일보의 사설들은 중국과 조선이 거의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해결책도 같다고 파악했다. 중국의 인민과 청년들을 훈계하는 듯 계몽적인 태도는 이런 직접적인 동일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20년대 중반 중국의 혁명이 진전되고 여기에 대한 인식의 폭이 확대되면서, 중국과 조선의 다른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족 혁명과 사회 혁명의 역사적 보편성이 중국에서 관철되고 있다고 파악하는 관점이 확산되었다. 특파원이나 현지 통신원들은 자신이 중국 혁명, 나아가 세계 혁명의 역사적 현장의 목격자라고 생각했다. 사회주의자들은 물론이고 민족혁명을 고수하던 민족주의자들에게도 중국 혁명은 해방의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1927년 이후 장제스가 국민당을 장악하고 중화민국이 안정화하면서, 제국의 시선에 입각한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입장이 강화되었다. 민족의 미래나 사회 혁명보다는 중국 진출이나 이윤 확대를 노리는 자본의 시선이 압도하기 시작했고, 현실의 정치 질서를 긍정했던 것이다.
Abstract
For intellectuals of colonial Korea, the Chinese Revolution of the 1920’ s was a golden opportunity to get rid of the colonialist view that had been built upon the imperialist paradigm rampant in their homeland. Dong-A Ilbo, the most prominent newspaper in colonial Korea back then, covered diverse opinions based on different views on China, ranging from those of the socialist revolution to others reflecting the colonial view of a China propagated by Imperial Japan. Of those views, the first to emerge was the one that equated Korea with China. Editorials published in Dong-A Ilbo in the early 1920’s suggested that China and Korea were largely in the same situation and therefore required the same solution. In the mid 1920’s, more and more people began to see that the historical universality of a national and social revolution was being accepted in China. The Chinese Revolution represented a possibility of liberation not only for the socialists, but also for the nationalists who held their ground for a national revolution. However, as Chiang Kai-shek took control of the the Nationalist Party and the Republic of China was stabilized after 1927, Dong-A Ilbo adopted a more realistic and secular position based on the imperialist view; Capitalism-based stances that aimed to take over China or gain more profit began to prevail over those focused on the future of the people or on a social revolution in Korea, thus approving the political landscape of the time.
참고문헌 (29)
- 김세호, "1920년대 한국 언론의 중국국민혁명에 대한 반응 - 동아일보 특파원 주요한의 신중국방문기 취재(1928. 10~1929. 1)을 중심으로", 중국학보, 40 (1929)
- 김세호, "북벌 직후 ‘新興中國’에 대한 한국 언론의 일 시각― 조선일보 특파원 李灌鎔의 취재(1928.10-1929.2)를 중심으로 ―", 중국근현대사연구, (61), pp.73~117 (2014), 중국근현대사학회
- 김시준, "申彦俊의 ?魯迅訪問記?에 관하여", 중국현대문학, (22), pp.1~24 (2002),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 노관범, "1910년대 한국 유교지식인의 중국 인식 - 柳麟錫, 朴殷植, 李炳憲을 중심으로 -", 민족문화, 40(40), pp.7~39 (2012), 한국고전번역원
- 민두기, "중국초기혁명운동의 연구" (1997), 서울대학교 출판부
- 민두기, "신언준(1903~1938)과 격동중국(1927~1935)의 현장보고", 중국근현대사연구, 9 (2000)
- 박한제, "아틀라스 중국사" (2007), 사계절
- 방평, "정래동 연구 : 중국현대문학의 소개와 번역을 중심으로", 석사, 국어국문학과, pp.2012
- 배경한, "쑨원과 한국 - 중화주의와 사대주의의 교차" (2007), 한울아카데미
- 백영서, "동아시아의 귀환" (2000), 창작과 비평사
- 송인재, "1920, 30년대 한국 지식인의중국 신문화운동 수용 -양건식, 정래동, 김태준의 경우-", 동아시아문화연구, (63), pp.71~97 (2015), 동아시아문화연구소
- 유용태, "백암 박은식이 본 ‘현실중국’과 ‘역사중국’, 1882~1925", The SNU Journal of Education Research, 25(1), pp.145~167 (2016), 교육종합연구원
- 윤덕영, "1926년 민족주의세력의 정세 인식과 ‘민족적 중심단체’ 결성 모색 -‘연정회 부활’ 계획에 대한 재해석-", 동방학지, (152), pp.245~299 (2010), 국학연구원
- 윤덕영, "신간회 창립과 합법적 정치운동론",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5), pp.107~163 (2010),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윤덕영, "신간회 초기 민족주의 세력의 정세인식과 ‘민족적 총역량 집중’론의 제기", 한국근현대사연구, (56), pp.42~79 (2011), 한국근현대사학회
- 윤덕영, "신간회 창립 주도세력과 민족주의세력의 정치 지형",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8), pp.79~128 (2011),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尹善子, "李灌鎔의 생애와 민족운동", 한국근현대사연구, (30), pp.7~34 (2004), 한국근현대사학회
- 이국헌, "「동광」에 나타난 민족계몽담론의 내면동력으로서 기독교사상 연구", 한국기독교신학논총, (95), pp.99~126 (2015), 한국기독교학회
- 이현희, "이관용의 사상 발전과 현실 인식", 동방학지, (174), pp.163~199 (2016), 국학연구원
- 임경석, "1926년 조선공산당의 코민테른 가입 외교", 사림, (39), pp.229~255 (2011), 수선사학회
- 임경석,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2008), 역사비평사
- 장신, "1920년 대정친목회의 조선일보 창간과 운영", 역사비평, (92), pp.291~327 (2010), 역사문제연구소
- 전인갑, "1920년대 신문, 잡지 언론을 통해 본 한국인의 중국인식의 성격: 5․30운동에 관한 동아일보의 언론을 중심으로", 서울대동양사학과논집, 11 (1987)
- 차웅환, "『東亞日報』 中國特派員 申彦俊(1904~1938)의 中國時局問題認識", 역사문화연구, (23), pp.179~210 (2005), 역사문화연구소
- 최선웅, "張德秀의 사회적 자유주의 사상과 정치활동", 박사, 한국사학과, pp.2014
- 최선웅, "1920년대 초 한국공산주의운동의 탈자유주의화 과정 ―상해파 고려공산당 국내지부를 중심으로―", 韓國史學報, (26), pp.285~317 (2007), 고려사학회
- 최선웅, "1924~1927년 上海 청년동맹회의 통일전선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근현대사연구, (44), pp.190~221 (2008), 한국근현대사학회
- 松本三之介, "近代日本の中國認識" (2011), 以文社
- 스테판 타나카, "일본 동양학의 구조" (2004), 문학과 지성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