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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문의 ‘安羅人戍兵’에 대한 재해석

Reinterpretation of the “Anlainsubyong(安羅人戍兵)” on the Gwanggaeto St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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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광개토왕비문의 영락 10년조에 등장하는 ‘安羅人戍兵’의 해석을 재검토하여 400년 고구려 남정의 실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우선 고구려의 비문이라는 사료의 특징을 감안하면서 비문의 훈적기사 서술방식을 비교․검토하였다. 그 결과 가야 세력인 안라가 비문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파악하였다. 영락 10년조가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라는 점과 ‘安羅人戍兵’이 기술된 위치 그리고 ‘安羅人戍兵’이 세 군데 기록된 점에서 볼 때 ‘安羅人戍兵’은 “신라인을 두다”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이해된다. 기존 연구에서는 400년 고구려의 남정에 대해 고구려의 한반도 남부 지역 진출과 가야 세력의 변동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安羅人戍兵’ 기사는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400년 전쟁을 살펴보면 고구려군과 신라군이 연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성을 점령하고 신라군에게 인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문에서 ‘安羅人戍兵’을 여러 번 반복하여 기술했던 것은, 전쟁의 성과를 신라에게만 베풀었음을 거듭 강조하고자 했던 고구려의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安羅人戍兵’ 기사는 5세기 초 고구려와 신라의 역학 관계를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신라가 가야 지역으로 진출하는 가운데 가야 제국 간의 변동 양상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Abstract

This article explores Koguryo’s conquest toward the south in 400, by reexamining the interpretation of the ‘安羅人戍兵’ phrase on the Gwanggaeto Stele. There is no record of Anla, which was one of the Gaya countries, in the inscription. The Gwanggaeto Stele focuses on the King’s achievements and was written from Koguryo’s point of view. In particular the article for the tenth year of Yeongrak concentrates on describing the relationship between Koguryo and Silla. Considering that the phrase ‘安羅人戍兵’ is placed in the section for the year 400 and that the phrase appears three times in the same inscription, it should be translated into “deploy Silla people”. Earlier studies have tended to analyze Koguryo’s conquest in 400 as its southern expansion and have tended to focus on Gaya’s position. However, it needs to be reanalyzed in light of the relationship between Koguryo and Silla, as the ‘安羅人戍兵’ phrase meant “deploy Silla people”. The Koguryo army joined up with the Silla one and handed over recaptured regions including Imnagara’s Jongbalseong to the Silla army during the war of 400. The fact that the phrase ‘安羅人戍兵’ was written several times in the inscription reflects the writer’s intention to emphasize Koguryo’s dispensation, which means that Koguryo assigned the recaptured regions from Wa and the newly conquered regions to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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