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朝鮮學’ 형성의 전제와 가능성

The formation of Chosŏn Studies, its basis and possibility, from late 18th century to the early 19th century

1

조회

0

다운로드

19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근대 이후 민족담론을 기반으로 형성된 조선학은 각 민족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조선만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조선후기 이루어진 조선에 대한 지식들도 모두 근대 조선학의 자장 안으로 포섭되었다. 하지만 중세에는 근대의 민족담론과는 다른 ‘중세 帝國의 논리’가 있었다. 중세 제국 하에서는 근대와 같이 각 민족 단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다. 제국의 질서는 제국이라는 중심과 그 주변으로 관계가 설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중세에 존재했던 조선에 대한 지식체계는 근대의 조선학과는 그 맥락이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임은 자명하다. 본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선후기 형성된 조선학의 내적 구조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내적 구조를 밝히기 위하여 전제 작업으로서 먼저 조선학 형성의 외부를 살폈다. 明淸交替 이후 동아시아에는 공통되게 자문화중심주의가 만연하였다. 명나라로 대변되던 기존 중화 질서가 해체되고, 夷狄 왕조인 淸나라가 집권하면서 조선, 일본, 베트남에서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고자 하는 사유가 발전하였다. 명청교체는 동아시아 사회의 ‘지역성’을 일깨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성 문제는 단순히 지역성 문제로 한정되지 않았다. 당시 제기된 지역성 문제는 그 내면에 보편성에 대한 고민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보편성에 대한 새로운 사유들이 이 지역성 문제에 담겨있었던 것이다. 중화가 해체되고 夷狄으로 여겨지던 지역의 세력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내외에서 존중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지역성을 보편성, 즉 중화라는 이름으로 수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중화라는 보편성을 새롭게 자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화는 기존에도 문화주의의 의미를 지녔지만 이 시기 오면서 더욱 문화주의적인 성격이 강조되었다. 그러한 사유경향은 조선에도 수용되었다. 조선의 北學派는 이러한 지적 경향을 수용하여 조선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하였다. 그들은 중화를 보편문화로서 인식한 바탕 위에 이를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하기에 특정 시대와 지역의 중화문화를 전범으로 삼는 것이 갖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조선의 독창성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었다. 중화가 어차피 구성된 것이라면 조선의 문화도 그 중화 문화의 엄연한 한 부분으로서 나름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조선이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였던 것에는 조선이 위치했던 지정학적 위치와 그에 따른 중심부적 특성이 작용하였다. 조선은 중국 제국의 중심에서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처해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일본은 조선보다 중심에서 먼 거리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자문화의 강조는 더욱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었다. 심지어 國學의 경우에서 보이듯이 일부 일본의 지식인들은 중국과의 관계 설정 없이 자신의 지역성이 갖는 중화성을 강조하였다. 베트남도 제국의 주변부에 위치하였기에 스스로 皇帝를 칭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본과 베트남의 모습은 조선과는 다른 정체성을 구성하였던 그들의 주변부적 입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본 글은 조선후기 조선학 형성의 외부와 내부를 살펴봄으로써 근대 민족국가 속에서 이루어진 조선학과 중세 중화주의 시대에 있었던 조선학과의 연속성과 차이점을 조명하여 양자 사이의 관계들을 전망하고자 하였다. 근대 민족국가 속에서 이루어졌던 조선학에 대한 연구와 전근대 시기 이루어진 조선학 연구는 구분되는 결절점을 갖는다. 가장 큰 차이로는 근대 조선학처럼 전근대 시기 조선학이 제국의 학문과 분명한 경계선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국 하에서의 조선학은 제국의 학문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것은 조선의 지역적 학문이 될 수도 있었지만, 곧 보편의 학문이 될 수도 있었다. 이 사이의 유동성은 무척 강한 것이었으며, 이것이 근대 민족국가 시기에 이루어진 조선학과 가장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중화적인 것’이 ‘조선적인 것’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며, ‘조선적인 것’이 ‘중화적인 것’이 될 수도 있었다.

Abstract

Chosŏn Studies formed after the modern period have been based on national discourse, which clarified the division between each nation and reinforced its uniqueness as Chosŏn Dynasty. Thus, most of the knowledges in Chosŏn studies made in the latter half of Chosŏn Dynasty can be included in the influential field of Modern Chosŏn studies. However, for the premodern period, logics of the premodern which can be distinguished from the modern national discourse, had influenced the Chosŏn studies. For example, in premodern period, there was no clear distinction between races, and the order of empire was established as the empire in the center and its neighboring area. It seems evident that the system of knowledge about Chosŏn Dynasty in premodern period is formed on the basis of different premises from those of modern Chosŏn Studies. In this study, I tried to disclose the internal structure of Chosŏn Studies that had been established in the latter half of Chosŏn Dynasty in this perspective. To reveal the internal structure, I started by looking into the outer part of Chosŏn Studies as a proposition work. The ethnocentrism has been commonly dominant in the East Asia after the replacement of Ming and Qing Dynasty. At the time, the existing Sino-Centrism led by Ming Dynasty fell apart, and the foreign dynasty of Qing took over the reign, which made the neighboring countries such as Chosŏn, Japan, and Vietnam respect their own culture and customs in various ways. In other words, the replacement of Ming and Qing Dynasty awoke ‘locality’ in societies among the East Asia. However, the locality they developed was not limited to merely emphasizing their own uniqueness. While developing their ‘locality’, the societies also had to consider the concept of ‘universality’ inherent in the concept of their ‘locality’. As previous way of Sino-centrism broke down, the neighboring countries somehow had to put the concept of universality, the new way of Sino-centrism, in their own locality to gain respect from the word including their own and outside of it. Therefore, they started to re-interpret the universality of Sino-centrism. Sino-centrism's characteristic as a culturalism, which had been understood as so until then, started to be even more emphasized around this period. Such trend was adopted to the Chosŏn Dynasty, especially to Pukhakpa(北學派: School of Northern Learning), who tried to find a new identity of Chosŏn on the basis of this trend. They regarded Sino-centrism as what had been historically reorganized as a universal culture. As a result, they criticized the traditional way of Sino-centrism, such as taking a specific period or locality as a model of development in Chosŏn, and could focus their thoughts to the originality of Chosŏn locality. It was reasonable in the sense that once Sino-centrism was made up, the culture of Chosŏn Dynasty might acquire universality of its own as a part of Sino-centrism culture. This identity was influenced by the geopolitical position of Chosŏn Dynasty and its subsequent characteristics in relation to China. Unlike Chosŏn Dynasty, which was located relatively close to the center of China, Japan and Vietnam were located in farther region where they could relatively emphasize more of the uniqueness in their own culture. Some Japanese intellectuals claimed to have their own Sino-centrism provided by their own locality, instead of establishing it in relations to the China. Also, in Vietnam, which was located in the area surrounded by the empires, could called their own king, the Emperor. It is notable to observe the case of Japan and Vietnam, in the sense that these cases show us their position as surrounding nations of China, and that it had formed identity unlike Chosŏn Dynasty.

참고문헌 (107)

  1. "純祖實錄"
  2. "英祖實錄"
  3. "正祖實錄"
  4. 天龍長城文化藝術公司 叢刊編, "欽定滿洲源流考 In: 中國邊疆史志集成 東北史志 第五部 1" (2004), 全國圖書館文獻縮微復制中心
  5. 朴珪壽, "瓛齋集"
  6. 朴趾源, "燕巖集"
  7. 本居宣長, "本居宣長全集" (1971), 筑摩書房
  8. 山鹿素行, "中朝事實" (1913), 金港堂書籍株式會社
  9. 杉田玄白, "日本思想大系-洋學 上-64" (1976), 岩波書店
  10. 成海應, "硏經齋全集"
  11. 宋能相, "雲坪集"
  12. 申之悌, "五峯先生集"
  13. 袁宏道, "역주 원중랑집 2, 5" (2004), 소명출판
  14. 兪漢雋, "自著"
  15. 李肯翊, "練藜室記述"
  16. 李德懋, "靑莊館全書"
  17. 李晩秀, "屐園遺稿"
  18. 李, "燕行記事"
  19. 李鈺, "藝林雜佩"
  20. 李裕元, "林下筆記"
  21. 李瀷, "星湖僿說"
  22. 李廷龜, "月沙先生集"
  23. 李贄, "焚書"
  24. 李海應, "薊山紀程"
  25. 李喜經, "雪岫外史" (1986), 아세아문화사
  26. 林羅山, "日本思想大系 28" (1975), 岩波書店
  27. 林春齋, "華夷變態" (1958), 東洋文庫
  28. 荻生徂徠, "荻生徂徠全集 17 In: 西田太一郞" (1976), みすず書房
  29. 鄭東愈, "晝永篇"
  30. 丁若鏞, "與猶堂全書"
  31. 佐藤一齋, "日本思想大系 46" (1980), 岩波書店
  32. 淺見安正(淺見絅齋), "日本思想大系 31" (1980), 岩波書店
  33. 淸 雍正帝, "大義覺迷錄 In: 近代中國史料叢刊 第三十六輯" (1967), 文海出版社
  34. 崔岦, "簡易集"
  35. 崔益鉉, "勉菴先生文集"
  36. 韓元震, "南塘集"
  37. 洪大容, "湛軒書"
  38. 洪羲俊, "傳舊"
  39. 黃景源, "江漢集"
  40. 가라타니 고진, "언어와 비극 (柄谷行人, 言葉と悲劇, 東京: 第三文明社, 1989)" (1989), 도서출판 b
  41. 가쓰라지마 노부희로, "동아시아 자타인식의 사상사(桂島宣弘, 自他認識の思想史, 東京: 有志舍, 2008)." (2008), 논형
  42. 강명관,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 (2007), 소명출판
  43. 강정인, "서구중심주의와 중화주의의 비교 연구: 그 전개과정과 특성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40(3) (2000)
  44. 계승범, "조선후기 중화론의 이면과 그 유산 —명・청 관련 호칭의 변화를 중심으로—", 韓國史學史學報, (19), pp.39~81 (2009), 한국사학사학회
  45. 고미숙, "18세기에서 20세기초 민족담론의 변이양상", 현대문학의 연구, 13 (1999), 한국문학연구회
  46. 고연희, "17C말 18C초 白岳詞壇의 明淸文學 受容樣相", 東方學, 1,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47. 구범진, "淸의 朝鮮使行 人選과 ‘大淸帝國體制’", 인문논총, (59), pp.179~228 (2008), 인문학연구원
  48. 김문식, "21세기 동아시아와 중화패권주의: 우리 속의 중화 사상", 오늘의 동양사상, 11, pp.121~136 (2004), 예문동양사상연구원
  49. 김영진, "朝鮮後期 明淸小品 수용과 小品文의 전개양상", 박사, pp.2003
  50. 김한규, "전통시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질서", 역사비평, 20 (2000)
  51. 김한규, "한중관계사 Ⅱ" (1999), 아르케
  52. 김흥규, "정치적 공동체의 상상과 기억", 현대비평과 이론, 30, 한신문화사
  53. 노명호, "高麗時代의 多元的 天下觀과 海東天子", 韓國史硏究, 105 (1999)
  54. 노태돈, "5세기 金石文에 보이는 高句麗人의 天下觀", 韓國史論, 19 (1988)
  55. 니시지마 사다오, "일본의 고대사 인식(西嶋定生, 李成市 編, 古代 東アジア世界と日本, 東京: 岩波書店, 2000)." (2000), 역사비평사
  56. 민두기, "대의각미록에 대하여", 진단학보, 25 (1964)
  57. 박한제, "中華의 分裂과 隣近 各國의 對應 - ‘多重的’ 中華世界의 成立", 중국학보, 54 (2006)
  58. 박희병, "淺見絅齋와 洪大容 - 中華的 華夷論의 解體樣相과 그 意味", 大東文化硏究, 40 (2002)
  59. 방경일, "滿洲源流考에 나타난 淸高宗의 東夷認識", 만주연구, 3 (2005)
  60. 벤저민 엘먼, "성리학에서 고증학으로 In: From philosophy to philogy: intellectual and social aspects of change in late imperial China,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예문서원
  61. 사미르 아민, "유럽중심주의 In: translated by Russell Moore, Eurocentrism,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89), 세종출판사
  62. 사카이 나오키, "사산되는 일본어ㆍ일본인(酒井直樹, 死産される日本語ㆍ日本人, 東京: 新曜社, 1996)." (2003), 문화과학사
  63. 심경호, "조선후기 한문학과 袁宏道", 한국한문학연구, 34, pp.117~156 (2004), 한국한문학회
  64. 안외순, "21세기 동아시아와 중화패권주의: 중화주의의 형성원리와 특성", 오늘의 동양사상, 11, pp.84~101 (2004), 예문동양사상연구원
  65. 오오키 야스시, "에도시대와 ‘동시대’로서의 명말 In: 명말 강남의 출판문화(大木康, 明末淸初の出版文化, 東京: 硏文出版, 2004)." (2007), 소명출판
  66. 왕가, "민족과 국가 - 중국 다민족통일국가 사상의 계보(王柯, 民族與國家 - 中國多民族統一國家思想的系譜,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1)." (2005), 고구려연구재단
  67. 우경섭, "宋時烈의 華夷論과 朝鮮中華主義의 성립", 진단학보, (101), pp.257~289 (2006), 진단학회
  68. 워런 코헨, "세계의 중심 동아시아의 역사 In: East Asia at the Cent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9), 일조각
  69. 유봉학, "燕巖一派 北學思想硏究" (1995), 一志社
  70. 유인선, "베트남 역사와 중국", 남방문화, 2 (1996)
  71. 이성규, "中華思想과 民族主義", 哲學, 37 (1992)
  72. 이성규, "中華帝國의 팽창과 축소: 그 이념과 실제", 역사학보, (186), pp.87~133 (2005), 역사학회
  73. 이시바시 다카오, "대청제국" (2009), 휴머니스트(石橋崇雄, 大淸帝國, 東京: 講談社, 2003)
  74. 이춘식, "중화사상: Sino-centralism" (1998), 교보문고
  75. 鄭 多 函, "朝鮮初期 野人과 對馬島에 대한 藩籬 · 藩屛 認識의 형성과 敬差官의 파견", 동방학지, (141), pp.221~266 (2008), 국학연구원
  76. 정민, "18세기 조선지식인의 발견" (2007), 휴머니스트
  77. 정옥자, "조선후기 조선중화사상 연구" (1998), 一志社
  78. 정재훈, "조선후기 史書에 나타난 中華主義와 民族主義", 한국실학연구, (8), pp.299~324 (2004), 한국실학학회
  79. 조너선 스펜스, "반역의 책 In: Treason by the book, New York: Viking" (2004), 이산
  80. 조성산, "17세기 말~18세기 초 洛論系 文風의 형성과 朱子學的 義理論", 한국사상사학, (21), pp.359~390 (2003), 한국사상사학회
  81. 조성산,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對淸認識의 변화와 새로운 中華 관념의 형성", 한국사연구, (145), pp.67~113 (2009), 한국사연구회
  82. 조성산, "조선후기 소론계의 古代史 연구와 中華主義의 변용", 역사학보, (202), pp.49~90 (2009), 역사학회
  83. 조성산, "조선후기 소론계의 東音 인식과 訓民正音 연구", 韓國史學報, (36), pp.87~118 (2009), 고려사학회
  84. 周勳初, "중국문학비평사 In: 中國文學批評小史" (1992), 이론과 실천
  85. 프라센지트 두아라, "민족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기 In: Rescuing History From the Nation: Questioning Narratives of Modern China,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삼인
  86. 허태용, "조선후기 중화론과 역사인식" (2009), 아카넷
  87. 후루타 모토오, "베트남의 세계사 In: ベトナムの世界史" (2008), 도서출판 개신
  88. Alexander Woodside, "Classical Primordialism and the Historical Agenda of Vietnamese Confucianism In: Rethinking Confucianism: past and present in China, Japan, Korea and Vietnam" (2002), UCLA Asian Pacific Monograph Series
  89. Evelyn S. Rawski, "The Last Emperors: A Social History of Qing Imperial Institutions" (1998),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90. Kai-wing Chow, "The Rise of Confucian Ritualism in Late Imperial China" (1994), Stanford University Press
  91. Mark C. Elliott, "The Manchu Way: The Eight Banners and Ethnic Identity in Late Imperial China" (2001), Stanford University Press
  92. Pamela K. Crosssely, "A Translucent Mirror and Identity in Qing Imperial Ideology" (1999),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93. Pamela Kyle Crossley, "Manzhou Yuanliu Kao and the Formation of the Manchu Heritage",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46(4) (1987),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94. 橘川俊忠, "日本における特殊主義の運命 (1) - 國學と民俗學の思想史的考察 In: 歷史と民俗: 神奈川大學日本常民文化硏究所論集 1" (1986)
  95. 桃木至郞, "中國化と脫中國化 In: 地域のロゴス" (1993), 世界思想社
  96. 渡辺浩, "東アジアの王權と思想" (1997), 東京大學出版會
  97. 尾藤正英, "日本の名著 16(荻生徂徠)" (1974), 中央公論社
  98. 王家驊, "日中儒學の比較" (1988), 六興出版
  99. 井上哲次郞, "日本古學派之哲學" (1915), 富山房
  100. 佐久間正, "德川日本の思想形成と儒敎" (2007), ぺりかん
  101. 酒井直樹, "過去の聲 - 一八世紀日本の言說における言語の地位" (2002), 以文社
  102. 竹田龍兒, "阮朝初期の淸と關係(1802-1870年) In: べトナム中國關係史" (1975), 山川出版社
  103. 荒野泰典, "江戶幕府と東アシア In: (日本の時代史 14) 江戶幕府と東アシア" (2003), 吉川弘文館
  104. 柳得恭, "三韓詩紀"
  105. 柳得恭, "古芸堂筆記"
  106. 洪吉周, "縹礱乙㡨"
  107. 洪吉周, "沆瀣丙函"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8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