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遺事』 「皇龍寺丈六」條의 造像 과정 검토
Reviewing the manufacturing process of the six-foot statue of Buddha, Hwangryongsa from Samguk y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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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6세기 신라사에는 불교의 공인부터 시작하여 신라 최대 사찰인 황룡사를 건립하고, 장륙의 거대불을 조성하는 등 불교 관련 기록들이 자주 보인다. 이 시기는 바로 법흥왕과 진흥왕이 재위한 기간으로 이들은 말년에 출가할 정도로 불교에 독실하였다. 불교 관계 기사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황룡사 장륙상의 조성이다. 『三國遺事』 塔像篇 「皇龍寺丈六」에서는 황룡사 장륙상의 조성 과정을 기록하였다. 장륙상을 조성하는데 필수적인 ‘재료’와 ‘모양’은 배에 실려 하곡현 사포로 들어왔다. 사포는 현재의 울산 지역으로 울산은 신라가 외국으로 출국하고, 외국에 서 입국하는 관문이었다. 장륙상의 재료와 모양은 572년 신라에서 북제에 파견한 사신이 신라로 돌아오면서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장륙상의 주조는 573년에 시작되는데 재료와 모양이 사포에 도착한 후 시간적 공백 없이 일련의 과정들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곡현의 관리는 즉시 박재품의 종류와 양을 조사하여 경사에 보고하였고, 이때 목간을 사용한 문서행정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경사에서 보고서를 검토하고 박재품의 이동을 허가하자 재료의 운송이 시작되었는데 재료는 경사까지 사람이 짊어지거나(負) 말에 싣거나(駄馬) 소에 실어서 운송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양은 재료와 함께 경사로 옮기지 않았다. 모양은 장륙상 조성에 필수적인 모형이기 이전에 불교의 선진국으로부터 온 소중한 불상이었으므로 사고의 위험이 큰 주조 장소에 두고, 함부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하곡현 동쪽에 동축사를 급조하여 모양을 안치하고, 모양을 치밀하게 모방한 ‘새로운 모양’을 제작하여 주조 장소인 문잉림에 두고 장륙상을 제작하였을 것이다. 재료는 서천 금교 부근의 흥륜사 앞길을 통하여 왕경 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흥륜사 앞길은 외국에서 온 승려와 부처의 사리, 불경 같은 불교 용품이 들어오는 관문으로 왕경의 중심지로 향하는 진입로이자 정문이었다. 재료는 이곳을 통과하여 주조 장소인 문잉림으로 옮겨졌다. 문잉림은 신성한 장소이자 목탄 생산 등 주조에 필요한 현실적 조건들이 완비된 장륙상 주조에 최적화된 장소였다. 장륙상 조성 장소가 갖추어야 할 자연(또는 자원) 환경과 황룡사까지의 이동거리, 청동생산유적 등을 종합하여 생각할 때 주조 장소로 황남동 376번지 유적과 그 주변이 주목된다. 이곳은 질 좋은 목재가 풍부했던 서천의 숲과 가까워 목탄 생산에 적합하고, 마립간기 최고 계층의 분묘가 있는 신성한 지역이며 6세기 중반으로 편년되는 청동생산유적이 확인된 장소로 황룡사 장륙상이 주조된 문잉림이라고 생각한다.
Abstract
Buddhism was frequently stated in the history of Silla from the beginning of 6th century. Buddhism was legalized while the biggest temple Hwangryongsa as well as the sixteen-foot statue of Buddha were constructed at that time. It was 6th century that the two kings, Beopheung and Jinheung reigned. They were such committed and religious that they became Buddhist monks in their latter years. In order to build the sixteen-foot statue of Buddha, materials and small-scale models of the statue were essential. In 572, Silla imported materials and models from the Northern Qi Dynasty through dispatched envoys. They arrived at Sapo, Hagokhyun, currently known as Ulsan where was an international channel of Silla. On arriving, the construction of the statue was undertaken without delay in 573. Officials from the local government checked the type and amount of shipment and reported to the capital of Silla by writing in the wooden documents. When the capital reviewed the documents and finally allowed to move shipment, the materials were transported by men, or horses/cows to the capital. However, the small-scale models were not moved to the capital along with materials. Since the models themselves were valuable statues from the Northern Qi Dynasty where had an advanced history and practice of Buddhism, models should not be stored in the construction site. Hence,Dongchuksa was rapidly built to enshrine models at the east side of Hagokhyun. In addition, another models were newly imitated and utilized instead so as to build sixteen-foot statues of Buddha in the construction site of Mooningrim. Materials were delivered to the capital through the road ahead of Heungryunsa, Geumkyo, Seocheon to Mooningrim. The monks from abroad or buddhist valuables such as sarira and canonical literatures used to pass through this road as well. Mooningrim was a scared and optimized place for the construction of the statue equipped with all necessary conditions. Considering optimal conditions for the construction of the statue including the natural environment for the production of wooden charcoal, distance from the port to Hwangryongsa, and site of statue cast in bronze in Silla, Hwangnamdong 376 and its neighborhood are considered as a high potential construction site of the sixteen-foot statue of Buddha, Mooningrim. This is due to the fact that Hwangnamdong 376 had abundant lumber nearby a forest of Seocheon, such a divine place with graves of top class, and bronze cast site in the mid-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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