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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대 황룡사(皇龍寺) 창건과 그 의미

The Foundation of Hwangnyongsa Temple and its meaning at the time of King Jinheung of Silla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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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황룡사가 창건된 배경과 목적에 관한 연구는 관련 기록이 소략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황룡사 창건에 관한 대략적인 윤곽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미처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부분도 확인된다. 예컨대 진흥왕대 활발하게 진행된 대외활동이 황룡사 창건 과정에 끼친 영향에 관해서는 거의 검토되지 못했다. 본 연구는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황룡사 창건의 배경과 목적을 대외적인 상황 속에서 살펴보았다. 문헌 기록과 고고 자료를 살펴보면 진흥왕 14년(553) 신궁(新宮) 조영을 위한 공사가 어느 정도 완료된 상태에서 사찰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최근 황룡사 보완발굴조사 내용을 참고하면 황룡사는 북편의 건물군(建物群)과 담장이 먼저 들어서고, 점차 불상(佛像)과 금당(金堂) 등이 갖추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흥왕이 신궁을 사찰로 전환하게 된 명분은 ‘황룡(黃龍)’의 출현이었다. 이때 ‘황룡’은 당시의 대외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백제 성왕(聖王)과의 경쟁 관계에서 우위를 가져간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파악하였다. 즉, 신라 토착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용’ 서상(瑞祥)에 황제를 표상하는 중국 ‘용’을 결합하여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신궁의 황룡사로의 전환은 백제와의 전쟁과 전쟁 이후 새롭게 확보한 영역을 안정시키는 데 집중하게 되면서 늦어지게 되었고, 결국 17년 만인 진흥왕 30년(569) 마무리되었다. 진흥왕의 불교정책은 백제 성왕과 마찬가지로 양무제(梁武帝)의 숭불(崇佛) 정책을 참고하여 실현한 것이었다. 특히 황룡사에 양의 국가대사였던 광택사(光宅寺)와 동태사(同泰寺)의 역할과 유사한 부분이 확인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황룡사는 진흥왕이 불교를 통치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황룡사는 진흥왕 당시부터 정치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찰이었다고 생각된다.

Abstract

Research on the background and purpose of establishing Hwangnyongsa Temple in the 14th reign of King Jinheung(553) has been studied despite the lack of relevant records. As a result, it was possible to see the general ideas of establishing Hwangnyongsa Temple. However, it is also seen that some parts could not have been thoroughly examined when looking at previous research. For instance, it was hardly considered the impact of international activities, was briskly conducted on the foundation of Hwangnyongsa Temple in the King Jinheung era. Therefore, this research will examine the background and purpose of establishing Hwangnyongsa Temple in the external context. As a result of reviewing the literature records and archaeological data, it can be seen that the construction plan for Singung – new palace, which had been finished laying the foundation, was changed its usage to a temple. The temple firstly consisted of a huge building with small buildings on the north side and a wall on the rest of the sides. Then, they gradually built Buddhist sculptures and Geumdang(Goden Hall, 金堂). King Jinheung changed the palace plan into the temple because of the emergence of ‘Hwangnyong – yellow dragon.’ The emergence of the Hwangnyong could be created by combining the Silla’s traditionally auspicious creature ‘Yong – dragon’ with the Chinese auspicious creature to reveal that king Jinheung dominated the Hangang River basin and took over the power in the competitive relationship with the king Seong(聖王) in Baekje. However, Hwangnyongsa Temple's construction took some time to build as Silla was more focused on stabilizing newly secured territories. The establishment of the Hwangnyongsa Temple by King Jinheung was related to worshiping Buddhism as a policy of Emperor Wu(武帝) of Liang(梁). Like King Seong in Baekje, King Jinheung intended to reveal the royal authority through Buddhism as Emperor Wu did political actions through Buddhism. One of the cases was that King Jinheung sacrificed his palace to build the Hwangnyongsa Temple. In that respect, the temple can be considered a significant temple since King Jinh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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