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룡사지 출토 불상의 몇 가지 문제
Various issues on the Buddhist Statues discovered at Hwangnyongsa Temple Site in Gye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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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는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39건의 불상관련 유물들을 다양한 관점(크기, 재질, 형식, 출토지등)으로 분석하여 실제 황룡사에 어떤 불상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이러한 불상들이어떤 용도로 사용되었고, 어떻게 봉안되었는지 함께 고찰해 보았다. 아울러 실제 출토된 유물들을 분석하여 황룡사 금당에 봉안되었던 본존불상에 대하여 유추해 보았다. 먼저 불상의 기능과 용도 문제는 불상의 크기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황룡사지 출토 불상을 크기에 따라 대형불, 중소형불, 소형불로 분류하였고, 각 불상들의 기능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울러 고대 사찰에서 소형 불상의 다양한 기능과 용도 등에 대해 최근 출토 사례를 통해 검토하였다. 특히 중소형 불상과 소형 불상의 비교분석을 통하여 그 기능과 용도가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소형(금동)불상 연구에 있어 용도와 기능의 문제는 중소형 불상과 소형 불상을 분리해서 검토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한편 황룡사 금당에 봉안되었던 본존불상에 대해 사료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검토해 보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또한 실제 발굴 출토된 대형 불상 편들을 통해 그 불상의 봉안문제와 조성연대를 추정해 보았다. 특히 본고에서는 황룡사 동금당지에서 출토된 塑造佛指를 통해 황룡사 동금당에대형의 소조불상이 봉안되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즉 황룡사 중금당지에는 574년 鑄成된 금동의 장육존상이 봉안되었으며, 동금당지에는 소조의 장육존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금당 동편건물지는 불상을 봉안하는 佛殿이었으며, 아울러 대칭의 서편 건물지 역시 불상을 모시는 金堂이었을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지막으로 동금당지에 봉안되었을 소조불상[塑造佛指]의 조성연대는 『三國遺事』, 『三國史記』에서 塑像(영흥사, 영묘사, 법립사 등의 주불)이 가장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7세기로 보았고, 발굴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된 동금당지 유구와 비교·검토하여 7세기 초로 추정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study attempts to explore the types of Buddhist Statues excavated at Hwangnyongsa Temple site by analyzing 40-plus relevant unearthed relics in terms of their sizes, quality of materials used, types, etc. This study also investigated what the Buddhist statues were used for and how they were kept. Conjectures have also been made about the main Buddha image, which based on the analysis of the relics that were unearthed, used to be enshrined in the Main Hall of the temple. First of all, it is thought that the sizes of the images of Buddha are closely associated with their function and usage. This study divided them into the following three categories: large, medium, and small. Then, based on the relics that have been unearthed recently, the study delved into their respective functions, along with the usage of small-sized Buddha images that were kept at olden-day temples. Finally, an examination was made of the main image of Buddha, which used to be enshrined in the Main Hall of Hwangnyongsa Temple, and of the period in which large-sized Buddha images, which have been unearthed, were produced. The clay fingers of a Buddha image that was unearthed from the eastern wing of the Main Hall of the temple leads one to guess that there used to be a large clay Buddha there. With this, one would then guess that the building used to be an ancillary Main Hall where images of Buddha were kept. It is estimated that the clay Buddha was made in the 7th century (about 600 AD), when a large number of them were made, which was recorded in Samguk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and Samguksaki (“Historical Record of the Three Kingdoms”), as a result of comparison with the site of the eastern wing of the Main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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