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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濊 邑落社會의 虎神信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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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東濊 邑落社會의 虎神信仰에 대한 구체적 실상을 부각하고, 그것이 初期國家의 발전과정에서 차지했던 역사적 성격에 대해 음미하였다. 우리나라 初期國家의 기본적인 社會構成單位로 상정되는 邑落은 읍락민의 生業과 관련된 활동공간으로서 주거지와 농경지 등을 포함하는 취락단위이다. 斯盧6村과 駕洛9村 등은 사로국본고는 東濊 邑落社會의 虎神信仰에 대한 구체적 실상을 부각하고, 그것이 初期國家의 발전과정에서 차지했던 역사적 성격에 대해 음미하였다. 우리나라 初期國家·가락국 등 小國의 구성단위로서 邑落과 서로 통할 수 있으며, 古地名에 산견되는 只본고는 東濊 邑落社會의 虎神信仰에 대한 구체적 실상을 부각하고, 그것이 初期國家의 발전과정에서 차지했던 역사적 성격에 대해 음미하였다. 우리나라 初期國家·伐본고는 東濊 邑落社會의 虎神信仰에 대한 구체적 실상을 부각하고, 그것이 初期國家의 발전과정에서 차지했던 역사적 성격에 대해 음미하였다. 우리나라 初期國家·夫里 등도 그 실체가 小國의 하위 지역단위로서 邑落과 맥을 같이한다. 東濊는 중국 郡縣과 고구려 등 주변 강대국의 간섭과 견제로 정치적 통합과 발전이 더디었으며, 이는 동예의 읍락 사이에 배타적인 생활영역과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게 고수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읍락의 信仰 및 祭儀 행위는 혈연적 유대감이 내재하여 소속 읍락원의 공동참여라는 운영원리가 작용하였다. 東部都尉가 관할한 領東7縣의 존재는 동예 지역에 三韓의 小國에 비견되는 政治體가 7개 이상 있었으며, 그 가운데 治所였던 不耐縣은 유력한 세력으로 부각된다. 실제로 不耐濊國은 漢代의 官制에서 확인되는 功曹본고는 東濊 邑落社會의 虎神信仰에 대한 구체적 실상을 부각하고, 그것이 初期國家의 발전과정에서 차지했던 역사적 성격에 대해 음미하였다. 우리나라 初期國家·主簿 등을 거느리면서 侯國의 면모를 유지하였다. 不耐侯는 다시 不耐濊王으로 임명되어 불내예국은 동예 지역의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삼한의 대국인 小聯盟國에 견줄 수 있다. 동예 읍락의 虎神信仰은 집단의 결속과 연대를 상징하는 혈연 집단의 존재와 연관되는 토템신앙의 전통과 맥이 닿는다. 虎神은 읍락을 지켜주는 정신적 보호자 역할을 하였으며, 읍락민들은 호신에 대한 祭儀를 통하여 재앙방지와 공동체의 안녕 등을 기원하였다. 또한 제의에 참여한 읍락민의 일체감을 형성하면서 읍락 내에 散在한 공동체 구성원의 결속력을 강화하데 기여하였다. 읍락의 발전과정에 따른 神觀의 형성과 변천, 그리고 거기에 수반한 제의행위는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역사적 산물이다. 실제로 夫餘와 高句麗의 제의형태는 ‘國中大會’의 祭天儀禮로 통합된 모습을 보이지만, 동예의 舞天은 天神과 함께 虎神을 숭배대상으로 삼았으며, 그것은 각각 삼한 國邑의 天神과 別邑의 鬼神에 견줄 수 있다. 삼한사회에서 신앙된 천신과 귀신은 각각 국읍과 별읍이라는 다른 장소에서 제의가 이루어졌으며, 그 神格도 서로 구별된다. 동예에서 신앙된 天神과 虎神 역시 제의장소와 신격을 서로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不耐濊侯와 같은 소연맹국의 지배자는 天神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였고, 읍락 단위에서는 전통적으로 고수되어온 虎神숭배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비록 동예의 호신숭배가 읍락에서 이루어졌더라도, 넓게 보아 그것은 읍락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祭天’ 행사였던 무천 의례의 범주에 포함되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Abstract

本考は, 東濊の邑落社會の虎神信仰に對する具体的な實相を浮刻して, それが初期國家の發展過程で占めた歷史的性格に對して吟味した。初期國家の基本的である社會構成單位で想定になる邑落は, 邑落民の生業と關連した 活動空間として住居地と農耕地などを包含する聚落單位だ。斯盧六村と駕洛九村などは, 斯盧國·駕洛國など小國の構成單位で邑落と相互通して, 古地名に散見する只·伐·夫里等は, その實体が小國の下位地域單位として邑落と脈を一にする。 東濊は, 中國郡縣と高句麗など周辺强大國の干涉と牽制で, 政治的統合と發展が遲滯になったし, これは東濊の邑落間に排他的である生活領域が, 强調されて共同体的である性格が强く固守される樣相で現われた。邑落の信仰と祭儀行爲は, 血緣的紐帶感が內在して所屬邑落員の共同參与という運營原理が作用した。 東部都尉が管轄する領東七縣の存在は, 東濊地域に三韓小國に比定になる政治体が七つ以上成立し, その治所だった不耐縣は有力な小國と考えられる。實際, 不耐國は漢代の官制として確認できる功曹·主簿などを設置して, 侯國の面貌を維持した。不耐侯は不耐濊王に任命されて, 不耐濊國は東濊地域の有力な政治勢力で三韓の大國に比肩になる。 東濊の邑落の虎神信仰は, 集団の結束と連帶を象徵する血緣集団の存在と密接するように連關されるトーテム信仰の伝統と一緖にする。虎神は邑落を守ってくれる精神的保護者役割をしたし, 邑落民らは虎神に對する祭儀を通して, 災殃防止と共同体の安寧を祈願した。また邑落內に散在していた共同体構成員の結束力を强化しながら, 祭儀に參与した構成員の一体感を形成するのに寄与した。 邑落の發展過程による神觀の形成と変遷, そしてそこに隨伴になった祭儀行爲は, 当時の社會相を反影した歷史的産物だ。實際で夫余と高句麗の祭儀形態は, 國中大會の祭天儀礼で統合される樣相を見せるが, 東濊の舞天は天神と一緖に虎神を崇拜對象にしたし, それは各各三韓の國邑の天神と別邑の鬼神に比肩できる。三韓社會で信仰になった天神と鬼神は, 各各國邑と別邑という他の場所で祭儀が成り立ち, その神格も各各區別になる。東濊で信仰された天神と虎神も, 祭儀場所と神格を區分して理解できる。すなわち不耐濊侯のような小聯盟國の支配者は, 天神に對する祭祀を主管し, 邑落單位では伝統的に固守されて來た虎神崇拜が成り立った。たとえ東濊の虎神崇拜が, 邑落で成り立っても, 広く見ればそれは邑落次元を越したことで, ‘祭天’行事だった舞天儀礼の範周に含まれたことと考え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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