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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槐山郡 陵村里 농민층의 경제적 지위 - 안동김씨 제학공파 동족마을 사례 -

Land Ownership’s Economic Status in the Neungchon Village during the Korean Empir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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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능촌리는 안동김씨 제학공파의 동족마을이다. 광무양안에는 이 마을에 능촌과 세곡평 등 9개의 자연촌이 있었고, 모두 86호가 있었다. 김씨는 41호(47.7%)가 살았고, 이들은 평균 3.45칸의 초가집에 거주하였다. 강호주는 가장 큰 15칸짜리 집에서 살았고, 김상욱과 신운경은 2채씩 소유하였으며, 5칸짜리 서당도 있었다. 마을의 토지는 밭이 16결 48부 6속(41.4%)이었고, 논이 23결 36부 8속(58.6%)로 모두 39결 85부 4속이었다. 이 가운데 김씨는 28결 46부 7속(77.5%)을 소유하였고, 21결 9부 4속(54.4%)을 경작하였다. 1결 이상을 소유한 사람은 모두 9명이었는데, 2~3결은 2명, 3결 이상은 1명뿐이었다. 김병호는 마을에서 3결 94부 1속(9.9%)을 소유하였다. 당시 지주들의 토지 소유와 경영을 살펴보면, 대지주가 없었고 그 규모가 크지 않았다. 1결 이상 소유자는 9명에 불과하였고, 최대 지주는 3결 94부 1속 정도였다. 주민의 직영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상위 지주들은 대체로 70~100%를 자경하였다. 충주군과 달리 경영지주와 병작지주는 많았으나, 광작농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이들은 자신의 거주지 주위에 대부분의 토지를 집중시켜 생산에 유리한 효율적인 농업경영을 도모하였다. 그리고 능촌리 주민들의 1/3이 넘는 31명(37.4%)은 전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충주군 전체(24.7%)와 풍덕리(18%)와 비교하면 매우 높아 경제적 지위가 열악하였음을 보여준다. 농민층의 경제적 지위는 83명 가운데 1결 이상의 부농은 9명(10.8%)에 불과하였고, 중농과 소농은 각각 6명(7.2%)이었으며, 빈농은 무소유 경작인 31명을 포함하여 62명(74.7%)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하층 농민층의 몰락과 함께 지주층의 상향화 추세가 증가하면서 토지소유의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Abstract

There were 86 folk houses(戶) in nine small hamlets, Neungchon village(陵村里) of Goesan-gun(槐山郡). Among them, the number of Andong Kims' folk houses were 41(47.7%). On average, each of them lived in 3.45 kans(間) of thatched houses. Gang Ho-ju lived in the biggest house, 15 kan of thatched house. Each of Kim Sang-uk and Shin Un-gyeong owned two houses. Land of village was distributed over 24 areas. Fields were 16 gyeol(結) 48 bu(負) 6 sog(束)(41.4%) and rice paddies were 23 gyeol 36 bu 8 sog(58.6%). Therefore, total fields were 39 gyeol 85 bu 4 sog. Kims owned 28 gyeol 46 bu 7 sog(77.5%) and Kim Byeong-ho had 3 gyeol 94 bu 1 sog, 9.9% of land. At that time, landlords' landholding had the following characteristics. First, there were no big landowners and the scale was not big. The owners of 1 gyeol and over were only nine persons and the richest landowner owned just 3 gyeol 94 bu 1 sog. Second, landowners who ranked high cultivated land ranged from 70 to 100 percent by themselves. The third, differently from the Chungju-gun(忠州郡), managemental landowners and sharecropping landowners many appear. Ten landowners who ranked high were managemental and sharecropping landowners. Lastly, landowners centralized their lands around their residential districts to improve the efficiency of agricultural management. However, 31 residents(37.4%) had no their own lands. Now, take a look at residents' economic staus in Neungchon-ri. Among 83 residents, the rich farmers of 1 gyeol and over were only nine persons(10.8%) and each of middle-class farmers and small farmers was six persons(7.2%). Poor farmers were sixty two persons(74.7%) including thirty one farmers who had no own lands. This show the collapse of lower farming class and the uptrend of landowning class was accelerated. As a result, the polarization of landholding has become more ser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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