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尙道 昆陽 栖鳳寺의 事跡과 佛書刊行 - 李穀의『栖鳳寺事跡』을 중심으로 -
慶尙道 昆陽 栖鳳寺の事跡と佛書刊行 - 李穀の『栖鳳寺事跡』を中心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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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인『栖鳳寺事跡』특히 李穀의 <栖鳳寺事跡文>을 중심으로 慶尙道 昆陽 栖鳳寺의 事跡과 佛書刊行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사적은 조선후기 영조 2년(1726)에 고성현령인 최응천이 記文을 붙여 목판본으로 간행한 자료이다. 현재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만 그 판본이 남아있다. 서봉사는 신라대와 고려시대에 용암사라는 사명으로 비보사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용암사는 고려후기 이른바 원간섭기에는 무외국통 정오가 하산소로 정하였고, 그 즈음에 서봉사로 명칭을 바꾸어 조선시대로 계승된 천태 및 법화신앙의 전통을 가진 사원이었다. 서봉사의 건립과 폐사를 살펴보면, 사적기에 사명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新羅 神文王 4년(684)에 鳳嵒寺였고, 고려후기에는 龍岩寺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명이었을 듯하다. 고려후기 충렬왕 28년(1302)에 국통 진감대선사 무외정오가 용암사를 하산소를 삼았다. 이 때 강주목사 김공량과 그 부인 이씨, 시중 철성공 이림이 재물을 희사하여 중창한 것을 계기로 栖鳳寺로 改名하였다. 폐사는 1832년에 편찬된『경상도읍지』에 서봉사가 이미 폐사된 것으로 나와 1832년 이전의 어느 시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봉사의 불서간행은 고려시대 봉암사 또는 용암사로 존재하던 당시와 관련된 간행으로 추정되는 불서는『天台四敎儀』와『科註妙法蓮華經』을 들 수 있다. 서봉사 이후 조선시대 불서간행은 16세기로부터 비롯하며,『妙法蓮華經』이나 불교의례서인『雲水壇謌詞』,『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의 간행을 들 수 있다.
Abstract
本稿は学界に知られなかった新しい資料である『栖鳳寺事跡』特に 李穀の <栖鳳寺事跡文>を中心に 慶尚道 昆陽 栖鳳寺の 事跡と 仏書刊行に対して検討した. この事跡は朝鮮後期英祖2年(1726)に固城県令である崔應天が記文を付けて木版本で刊行した資料だ.現在東国大学校中央図書館にだけその板本が残っている.栖鳳寺は新羅と高麗時代に龍岩寺という寺名で裨補寺院の役目を遂行した. 特に龍岩寺は高麗後期いわゆる元干渉期には國統無畏丁午が下山所で決めたし, その頃に栖鳳寺で名称を変えて朝鮮時代へ繼承された天台及び法華信仰の伝統を持った寺院だった. 栖鳳寺の建立と廢寺をよく見れば, 寺跡記に寺名が初めて現われることは 新羅 神文王4年(684)に鳳嵒寺だった. 羅末麗初にも相変らず鳳嵒寺と呼ばれた. 高麗後期には 竜岩寺が一般的に知られた寺名だったろう. 高麗後期 忠烈王28年(1302)に國統真鑑大禪師無畏丁午が竜岩寺を下山所をした. この時康州牧使金公良とその夫人李氏, 侍中鐵城公李琳が財物を喜捨して重創したことをきっかけで栖鳳寺で改名した. 廢寺は1832年に編纂された『慶尚道邑誌』に栖鳳寺がもう廢寺されたことで出て,1832年以前のどの時期に廢寺されたことに推定される.栖鳳寺の仏書刊行は高麗時代鳳岩寺または竜岩寺で存在した当時と係わる刊行に推定される佛書では『天台四教儀』と『科註妙法蓮華経』だ. 栖鳳寺以後朝鮮時代仏書刊行は 16世紀から含めて,『妙法蓮華経』や仏教儀禮書である『雲水壇謌詞』,『天地冥陽水陸斎儀纂要』を刊行した.
참고문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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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昆陽郡邑誌", ~
- "東國輿地勝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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