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9세기 진천 평산 신씨의 노비 소유와 노비의 존재양상
The Slave Ownership and its Modalities of Being of Pyeongsan Shin Family in Jincheon from 17th to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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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진천 평산 신씨가 남긴 호구 자료를 분석하여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이해하고, 노비의 소유 규모와 존재 양상을 살핀 것이다. 14명의 主戶가 1669년부터 1891년까지 8대 220여 년 동안 51건의 자료를 남겼다. 노비 기재방식은 대체로 호구 자료마다 비슷하지만 시기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다. 17세기에는 외방노비를 지역별로 구분하여 이름과 나이 등을 표기하였고, 특히 申繼의 자료에는 노비의 四祖까지 자세히 밝혀 철저하게 관리하였다. 솔노비질․외거노비질․도망노비질의 분류가 체계적이지 않거나 이름과 나이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고, 申繼와 申大源의 동일 식년 호적단자와 준호구는 노비의 수와 이름 일부가 일치하지 않다. 그리고 인접한 특정 식년의 자료 사이에 급격한 노비의 증감현상도 보이고 있다. 평산 신씨는 호구 자료를 작성하는 단계부터 혼인한 아들 부부는 물론 형제 부부까지 함께 기재하는 예가 많았고, 반대로 혼인한 아들의 일부와 미성년 아들은 기재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당시 호적단자는 合戶와 分戶를 거쳐 작성되었을 것이며, 호적대장에서도 다시 편호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평산 신씨가 보유한 노비는 1705년을 기점으로 크게 감소하여 300여 구이던 것이 1726년에는 27구에 불과하였다. 18세기 이후에는 50~20여 구를 넘지 못하였고, 19세기에는 10구 이하였으며, 19세기말에는 1구를 보유하는 정도였다. 이들이 소유한 노비는 모두 1,463구이었으며, 솔거노비가 371구(25.4%)이고, 외거노비가 742구(50.7%)이며, 도망노비는 349구(23.9%)였다. 전체적으로 외거노비가 절반을 차지한 가운데 솔거노비와 도망노비는 비슷하였다. 외거노비는 선대의 묘소가 있는 금천에 90구(14.3%), 한성에 43구(6.8%), 공주에 53구(8.4%)가 있는 등 다양한 지역에 분포하였다. 노비의 남녀 성비는 노가 719구(49.1%)이고, 비가 743구(50.8%)로 비슷하였다. 17세기에는 노와 비가 각각 312구(46%)와 366구(54%)였고, 18세기에는 365구(53.3%)와 320구(46.7%)였으며, 19세기에는 42구(42.4%)와 57구(57.6%)였다. 노비의 나이는 17세기에 壯(16~50세)이 56%를 차지한 가운데 弱(15세 이하)과 老(51세 이상)의 비중은 비슷하였고, 18세기와 19세기에도 장년층이 40% 이상이었다. 미상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노동력이 큰 장년층이 62.9%를 차지한 가운데 21~50세가 51.5%였고, 1~20세 및 51세 이상은 48.5%였다.
Abstract
This study set out for fourteen people of Pyeongsan Shin Family to analyze hogu data which are for 220 years throughout eight generations from 1669 to 1891 and looked into the size of Shin Family ownership of slave and it the modalities of being with their socioeconomic status understood. The ways to register slaves depend on time. That is, outside slaves who were able to own their property in 17th century are classified by region and especially, the data offered by Shin Gye(申繼) revealed the details up to a slave’s the fifth generation. It is also classified the slaves by three types, such as resident slaves who lived with as his owner household slave, outside -resident slaves who are able to own their property and escaped slaves. But some slave names and ages were not accurate, despite the data of the same year, some cases didn’t match up one anther. In addition, these data show that the number of slaves sharply rose and fell around the same time. Pyeongsan Shin family put sibling couples along with son and wife from the first step to make the Pyeongsan Shin family’s hojukdanja(戶籍單子) and junhogu(准戶口). At that time, hojukdanja showed that it was brought some hogu(戶口) together or divided up to some extent. The slaves of the Shin family have greatly been decreased since 1705. In 1726, their numbers moving from approximately 300 people in 1705 to about twenty seven people in 1726. After that, this figure stayed between twenty and fifty people but in 19th century, the number was below ten people. Finally, in the end of the century, Shin family had only one slave. Shin family had a total number of 1463 slaves. Among them, resident slaves accounted for 25.4%(371) and 50.7%(742) of slaves were outside-resident slaves. The rest of them was escaped slaves accounting for 23.9%(349). Especially, outside-resident slaves has distributed over a variety of areas, ranging from Geumcheon and Hannyang to Gongju region with their ancestors’ graves. Slaves' gender ratio is 49.1 percent male(719) and 50.8 percent female(743). In 17th and 19th century, female slaves were a bit higher than male slaves but the former was lower than the latter in 18th century. In terms of age, aged 16~50 servants accounted for 62.9% and the percentage of slaves below age fifteen and above fifty one was similar in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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