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미국 Hawaii대학 소장 准戶口 寫本을 통해 본 18세기 중엽 通津府 거주 昌寧 成氏 일가의 소유 노비 양태 -해외 소재 ‘동아시아한국학’ 자료의 조사 및 분석-

Aspects of Owned Servants by the Changnyeong Sung Family Who Lived in Tongjinbu (通津府) in the Mid-Eighteenth Century, On the Basis of Copy of Junhogu (Extract of Family Registers) Possessed by the University of Hawaii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이 연구 논문은 해외에 소재한 한국학 자료를 조사, 소개하고 더 나아가 자료를 考究하여 역사적 이해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미국 하와이대학교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戶 籍簿寫』자료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이 자료 책에 수록된 88건의 호적 자료 중 “1765년通津 成奎海 准戶口”를 택하여 자료에 기재된 소유 노비 345명의 양태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확인된 내용 및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료에는 소유 노비의 使役 형태를 ‘率奴婢秩’ㆍ‘外方奴婢秩’ㆍ‘逃亡奴婢秩’로구별하여 기재하였는데, 전체 노비 가운데 솔노비가 약 25%, 외방노비가 약 65%, 도망노비가 약 10% 정도의 비율로 존재하였다. 성별로는 노가 약 52%, 비가 약 48%로 나타나소유 노비의 성별 분포가 대체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소유 노비 중 가장 많았던 외방노비는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경기도ㆍ충청도ㆍ전라도에 각 3개 고을, 경상도ㆍ황해도에 각 2개 고을, 강원도ㆍ평안도에 각 1개 고을 등, 총 15개 지역에 분포하였다. 그 가운데 강원도 江陵에만 외방노비의 약 43%가 集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경기도 通津에 거주한 上典 창녕 성씨 일가가 강릉과 매우 특별한 연고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셋째, 전체 소유 노비의 평균 연령은 약 45세였으며, 성별로는 노가 약 43세, 비가 약 47세로 나타났다. 사역 형태별 평균 연령은 솔노비가 약 31세(노 29세, 비 33세), 외방노비가 약 51세(노 49세, 비 54세), 도망노비가 약 48세(노 42세, 비 60세)였다. 따라서 노와 비교해 볼 때 비가 다소 고령화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넷째, 연령별 분포는 최연소 3세(솔노)에서 최연로 92세(외방노와 도망노)였으며, 연령대로는 ① 10대(13.3%), ② 20대(11.3%), ③ 50대(10.7%), ④ 30대(10.1%), ⑤ 40대(9.5%), ⑥ 60(8.6%), ⑦ 70대(8.3%), ⑧ 80대(5.3%), ⑨ 10세 미만(1.8%), ⑩ 90대(1.5%) 등의 순서를 보였다. 다섯째, 연령을 모른다고(‘不知’) 기재한 노비 총 66명이었는데 솔노비는 3명의 불과하였고, 나머지 63명(약 96%)은 모두 외방노비였다. 아무래도 외방노비의 경우 상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연령 파악이 용이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하겠다. 반면 상전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던 도망노비의 경우 모두 연령을 기재하고 있어 소유 재산인 노비에 대한 창녕 성씨 일가의 강한 집착을 엿볼 수 있었다. 여섯째, 혼인 유형은 노비 간의 혼인이 약 70%, 良賤 간의 혼인이 약 30%로 나타났다. 노비 간의 혼인에서는 주인 成奎海의 소유였던 ‘班奴’와 ‘班婢’ 간의 혼인이 약 23%, 成奎海 소유 노비(班奴ㆍ班婢)와 타인 소유의 노비(私奴ㆍ私婢)와의 혼인이 약 46%로 나타났다. 양천 간의 혼인에서는 반노와 양녀 간의 혼인이 약 10%, 반비와 양인 간의 혼인이 약21%로 나타났다. 끝으로, 전체 소유 노비 중 가족 관계가 확인되는 경우는 약 86% 정도로 나타나 조선후기 양반가에서 소유하고 있었던 노비의 경우 대다수가 가족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솔노비와 외방노비 간에는 서로 가족 관계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18세기 성규해 일가의 경우 소유 노비를 사역 형태별로 단절하여 관리하고 있었다는 점을살필 수 있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search and introduce some materials on Korean studies which are held abroad, and to get historical understanding by studying them. The author gives a brief introduction to a book named Hojeokbusa (戶籍簿寫) which is in the possession of the Library at the University of Hawaii. He selects the “Extract of Family Registers, Sung Gyu-Hae, Tongjin, 1765” among eighty-eight family registers and examines the three hundreds and forty-five servants listed in it. First of all, the data divided the servants owned by the Changnyeong Sung Family into three categories:live-in, live-out, and runaway. Among them, live-in accounted for about 25%, live-out about 65%, and runaway about 10%. Males accounted for about 52% and females about 48%. It is likely that the sex ratio was relatively balanced. The live-out servants lived all over the country except Hamgyeong Province. They lived in a total of fifteen areas:three towns in Gyeonggi, Chungcheong, and Jeolla Provinces respectively, two in Gyeongsang and Hwanghae Provinces respectively, and one in Gangwon and Pyeongan Provinces respectively. Especially, about 43% of all live-out servants lived together in Gangneung. This shows that the members of Changnyeong Sung Family lived in Tongjin had a special connection to Gangneung. The data shows that the average age of the all servants was about forty-five years old. It was forty-three for men and forty-seven for women. It was thirty-one for live-in servants (twenty-nine for men and thirty-three for women), fifty-one for live-out servants (forty-nine for men and fifty-four for women), and forty-eight for runaway servants (forty-two for men and sixty for women). Female servants were older than male servants. Regarding the age distribution, the youngest (live-in) was three years old and the oldest (live-out and runaway) were ninety-two years old. 13.3% were in their teens, 11.3% in their 20s, 10.7% in their 50s, 10.1% in their 30s, 9.5% in their 40s, 8.6% in their 60s, 8.3% in their 70s, 5.3% in their 80s, 1.8% were under the age of 10, and 1.5% were in their 90s. It was stated that the ages of the sixty-six servants were unknown. Sixty-three (96%) of them were all live-out servants except three live-in servants. It must have been difficult for their owners to determine the age of them living far away. On the contrary, ages of the runaway servants were all stated. It shows that their owners made clear that they belonged to the Changnyeong Sung Family lived in Tongjin. Regarding marriages of the servants, 70% of them were same-class marriages and 30% of them were interclass marriages. About 23% were a marriage of two servants both belonged to Sung Gyu-Hae, about 46% were a marriage of Sung Gyu-Hae’s servant and a servant owned by others, about 10% were a marriage of a male servant and a female commoner, and about 21% were a marriage of a female servant and male commoner. Finally, about 86% of the servants were in familial relations. It shows that servants owned by the noble families in the later period of Joseon were in familial relations. However, the familial relationship between live-in servants and live-out servants was not confirmed. This suggests that in the 18th century, Sung Gyu-Hae's family managed servants by separating them by ministry type.

참고문헌 (30)

  1. "1765년 通津 成奎海 准戶口, 戶籍簿寫", 미국 하와이대학 도서관 소장. 소장 번호:East Asia DS 901.P5 V.317, ~
  2. Japanese Sources on Korea in Hawaii, "Minako I. Song", Center For Korean Studies, University of Hawaii, ~ (1980)
  3. 全炯澤, "朝鮮後期奴婢身分硏究" (1989), 일조각
  4. 平木 實, "朝鮮後期 奴婢制 硏究" (1982), 지식산업사
  5. 권기중, "조선후기 경주 최부자댁의 가족구성과 노비경영 — 호구단자를 중심으로 —", 사림, (76), pp.235~257 (2021), 수선사학회
  6. 김영나, "17~18세기 소수서원 노비의 혼인과 가족", 영남학, (73), pp.59~93 (2020), 영남문화연구원
  7. 김영나, "17~19세기 병산서원 노비의 존재양상",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67(67), pp.149~196 (2021), 대동한문학회 (구.교남한문학회)
  8. 김영나, "18세기 옥산서원 노비의 양상", 민족문화논총, (79), pp.291~326 (2021), 민족문화연구소[DOI]
  9. 김의환, "17~19세기 진천 평산 신씨의 노비 소유와 노비의 존재양상", 한국학논총, 44, pp.217~258 (2015), 한국학연구소
  10. 김의환, "진천 평산 신씨 노비 가족의 존재양상 -노비의 결혼과 가계 계승을 중심으로-", 古文書硏究, 52, pp.313~342 (2018), 한국고문서학회[DOI]
  11. 李海濬, "朝鮮後期 湖西地方 한 兩班家의 奴婢所有實態-公州中湖·慶州李家所傳 戶口單子分析-", 湖西史學, 8·9합 (1980), 호서사학회
  12. 문숙자, "16-17세기 兩班家 노비 가족의 존재 형태- 固城李氏 臨淸閣 分財記 분석을 통하여 -", 古文書硏究, 32, pp.147~173 (2008), 한국고문서학회[DOI]
  13.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單子와 準戶口의 작성과정 연구 -慶州府의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중심으로-", 古文書硏究, 38, pp.155~186 (2011), 한국고문서학회[DOI]
  14. 박경하, "조선 후기 忠淸 懷德縣 宋村里 지역의 私奴婢 존재 양상-恩津宋氏 同春堂 後孫家 호적자료를 중심으로-", 역사민속학, (53), pp.159~198 (2017), 한국역사민속학회[DOI]
  15. 西川孝雄, "17·8世紀安東·星州兩班『戶籍』の一檢討-率居及び外居奴婢の分析-", 名古屋大學東洋史硏究報告, 1 (1972), 名古屋大學東洋史硏究會
  16. 유창호, "20세기 초 경기도 통진군 ‘보구곶’마을 사람들의 생활 양태 -1901년(光武 5) 通津郡 甫口串面 戶籍자료 분석 사례-", 역사민속학, (40), pp.37~70 (2012), 한국역사민속학회
  17. 李榮薰, "韓國近代經濟史硏究의 成果:秋堰 權丙卓 博士 華甲紀念論叢 Ⅱ" (1989), 형설출판사
  18. 이영훈, "韓國中世史論叢(李樹健敎授停年紀念)" (2000), 韓國中世史論叢(李樹健敎授停年紀念) 간행위원회
  19. 김건태, "조선후기 사노비 파악방식", 역사학보, (181), pp.99~129 (2004), 역사학회
  20. 이원희,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와 조선", 일본어문학, (38), pp.405~422 (2007), 일본어문학회[DOI]
  21. 임학성, "1910년 3월 大韓帝國 度支部에서 活字로 간행한 “1663년 漢城府 北部戶籍” - 최초의 활자 인쇄본 戶籍大帳 開國二百七十二年癸卯式年北部帳戶籍의 소개 -", 古文書硏究, 58, pp.117~146 (2021), 한국고문서학회[DOI]
  22. 임학성, "조선시대 奴婢制의 推移와 노비의 존재 양태 -동아시아의 奴婢史 비교를 위한 摸索-", 역사민속학, (41), pp.73~99 (2013), 한국역사민속학회
  23. 전경목, "도망노비에 대한 새로운 시선", 전북사학, (40), pp.91~127 (2012), 전북사학회[DOI]
  24. 전종한, "근대이행기 조강 연안의 포구 성쇠와 포구 네트워크 -김포반도의 거점 포구들을 중심으로-", 대한지리학회지, 52(2), pp.187~209 (2017), 대한지리학회
  25. 전형택, "조선 후기 한 양반가의 호적자료를 통해 본 사노비의 존재양태-광주 전의이씨 문의공파 종가 소장고문서의 사례 분석-", 朝鮮時代史學報, 15 (2000), 조선시대사학회
  26. 전형택, "조선후기 고문서에 나타난 仰役奴婢의 성격", 全南史學, 17 (2001), 전남사학회
  27. 정진영, "조선후기 호적자료를 통해 본 사노비의 존재양태 - 대구 경주최씨가를 중심으로 -", 지방사와 지방문화, 11(1), pp.183~223 (2008), 역사문화학회[DOI]
  28. 최승희, "戶口單子ㆍ准戶口에 대하여", 규장각, (7), pp.81~112 (1983),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9. 平木實, "十七·八世紀における奴良妻所生の帰屬について", 朝鮮學報, 61 (1971), 朝鮮學會
  30. 韓榮國, "朝鮮 中葉의 奴婢結婚樣態(上)-1609년의 蔚山戶籍에 나타난 事例를 중심으로-", 歷史學報, 75·76합 (1977), 역사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5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