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제동맹기 백제-신라의 문화교류
The Cultural Interaction Between Silla and Baekje During the Silla-Baekje Alli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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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5세기 전반부터 6세기 중엽까지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고, 고토수복을 위해, 신라는 고구려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 팽창을 위해 백제와 신라는 화친과 동맹을 되풀이하면서 관계를 유지하여 왔는데, 이를 소위 나제동맹이라 한다. 나제동맹이 유지된 이 1세기 반가량의 기간 사이에 백제와 신라는 다양한 부면에서 교류관계를 유지하였고, 그러한 흔적의 물질자료들이 백제와 신라 양 지역에서 확인되었다. 이 양 지역에서 확인된 교류의 산물이 나제동맹의 결과물로만 단정할 수 없지만, 5세기 말에서 6세기 전반의 시기에 집중해서 양 지역 중앙 지배층의 신분을 표상하는 위세품에서 제작기술과 디자인이 유사하고, 신라 왕성인 월성해자와 손곡동 및 육통리 등의 신라 초기 기와 생산유적에서 백제 造瓦術과 디자인이 반영된 점은 백제와 신라 최고 지배층간에 밀접한 관계가 유지된 시기가 있었음을 나타낸다. 이 시기의 교류는 497년 백제와 신라의 결혼동맹과 그에 의해 일정 기간 유지된 결과를 의미하는 자료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백제와 신라 지배층간의 교류에도 불구하고, 나제동맹 기간에 신라는 충북 영동-보은-청원 등 호서 동부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음이 물질자료에 반영되어 나타났는데, 이는 나제동맹의 실제적인 내용과 형태에 대해 기록과 물질자료가 연계된 검토가 필요함을 인식시켰다.
Abstract
The Silla-Baekje Alliance was maintained from the beginning of the 5th century to the mid 6th century between Silla and Baekje through amity and mutual commitments. Baekje was trying to resist the southwards advancement of Goguryeo and recapture its old territory. Silla was trying to free itself of Goguryeo’s interference and to expand its territory. For the century and a half that the Silla-Baekje Alliance was maintained, there were various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material proof of these relations have been found in both regions. The proof of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cannot be solely attributed to the actual Silla-Baekje Alliance. However a clos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highest ruling classes of the regions can be deduced to have existed for a period of time. This is from factors such as the similarity from the end of 5C to the beginning of 6C of the crafting techniques and design of the prestige goods that represent the central ruling class of the two nations and the fact that Baekje’s tile crafting technique and design was applied to Silla’s palaces as was found in the early remains of Silla’s roof tile remnants. The interaction of this period can be attributed to the effects of the Marriage Alliance between Silla and Baekje in the year 497. Despite the relations of the Baekje and Silla ruling classe, it has been shown through material proof that Silla expanded its territory eastwards of Hoseo to the Chungbuk Yeongdong, Boeun and Cheongwon regions. This signifies a need for a parallel verification of the actual content and format of the Silla-Baekje Alliance through written and material pro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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