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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賜賻·賜諡·賜祭儀禮와 明禮의 영향

The Establishment of protocols for Receiving Sympathy Gifts, the Posthumous Name and the Funeral Oration sent by the Ming Emperor in the Early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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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는 조선 초기 賜賻·賜諡·賜祭儀禮의 성립과 그 과정에서 발견된明禮의 영향 및 조선의 독자적인 정비내용을 검토하였다. 그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조선에서는 명으로부터 받은 의주를 준용하여 사부·사시·사제의주를 성립하였다. 태종 8년(1408) 태조가 사망하자, 영락제는 시호·부물·제문을 보냄과 동시에 명 국내의 王·公·大臣을 대상으로 제정한 관련 의주를조선에 전달하였다. 조선에서는 명에서 보낸 의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의례 참여자의 자리 및 의물의 위치가 모두 동일하였고, 전반적인 의례절차도 완전히 같았다. 둘째, 조선에서는 명 의주에서 조선의 상황에 맞지 않는 구절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절차를 삽입하였다. 사부 명령이 칙서로 전해질 경우 조선 迎勅의례의 정비결과에 따라 사신이 문서를 선독하지 않거나 사시·사제의례 당일에 가장 먼저 국왕이 혼전에서 哭禮를 행하는 등의 절차를 통해 확인된다. 이는 이들 의례가 조선 땅에서 조선의 대행왕을 위해 거행하는 의례임을분명히 하는 작업이었다. 셋째, 五禮儀의 「사부의」·「사시의」·「사제의」는 의례의 정치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편제되었다. 실제 조선 초기 사부·사시·사제의례는 先王의 國喪 을 우선하여 사제의례, 사부의례, 사시의례의 순으로 거행되거나 날을 달리하여 길일을 택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사부·사시·사제의례가 같은 날동시에 거행되었다. 그러나 오례의에 수록된 국가의례는 현존하는 질서의정당성을 확인하는 정치적인 행위로, 관례가 아닌 정형화된 원칙이 담겨야했다. 이에 오례의에는 嗣王의 권위를 중시하여 사부의례가 가장 우선에배치되고, 국왕의 역할이 적은 사제의례가 마지막에 편제되었다.

Abstract

There are rites in which a Ming Emperor gives sympathy gifts to the bereaved king(賜賻儀禮), the posthumous name to the late king(賜諡儀禮) and the Funeral Oration to a funeral(賜祭儀禮) in Joseon's funeral ceremonies(凶禮). The results of reviewing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se rites in the early Joseon are as follows. First, the Ming sent related procedures(儀注) so that Joseon could perform these rites, and Joseon actively accepted them. The positions of the rite participants and the positions of the objects were all the same, and the overall rite procedures were completely the same. Second, among the procedures sent by the Ming, Joseon revised phrases that did not fit the situation of Joseon or inserted new phrases. This was a work to clarify that these rites were held for the king of Joseon in the land of Joseon. Finally, These rites contained in National Five Rites(五禮儀) did not follow customs and were thoroughly organized according to the political purpose of the rite. Accordingly, the rite of revealing the authority of the king by receiving sympathy gifts from a Ming Emperor was placed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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