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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론에 가려진 조선중기의 유학자, 진일재 류숭조

A Confucianist in the middle Joseon covered with the argument of authenticity lineage : Ryu Su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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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사에 있어서 15세기는 중국에서 전래한 성리학이 조선의 환경에 맞추어 수용되면서 정착해 간 시기이다. 이 시기는 조선 성리학이 당대의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 성리학과 다른 독자적 특성을 형성한 시기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시기의 역사적 과제는 유교윤리와 도학정치의 정착으로서 이론과 실천 양 방면에서의 실질적인 성과가 없이는 이러한 과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주로 저항, 절의 등 실천적 방면에서 드러난 성과에 주목하였고, 학술이나 이론 방면에서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저조한 편이었다. 이 시기의 유학계에 대한 평가가 역사적으로 저조했던 이유에 대해, 학계에서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해 왔다. 첫째는 이 시기의 이론적 성과 자체가 각종 주장과 이설이 난무하던 후대에 비해 빈약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풍부하지 않은 학문적 성과마저도 ‘도통’이라는 잣대로 접근하다 보니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진일재 류숭조는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된다. 그는 실천에 있어서 전형적인 도학적 자세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성리학 이론의 수용과 정착에 있어서 필적할 수 없는 탁월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당대의 최고 수준의 성리학자였고, 『대학십잠』과 『성리연원촬요』 등 저술을 통해 중종‧효종‧정조 등 군주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조선왕조의 성리학적 왕도정치의 확립에 공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가가 소홀했던 것은, 그가 이른바 도통의 계보와 사승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으며 평생을 벼슬살이에서 보낸 결과 후학을 양성하지 못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밖에도 중종대 조광조를 중심으로 하는 사림세력이 이념적 우위와 학문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도통의 계보를 설정한 이래 학파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림들이 자신들의 학문 연원을 오로지 도통계열에서 찾고자 했던 사회 분위기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또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까지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도통론에 의해 가려진 조선중기 유학사의 실상을 파악하는 일은 한국유학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Abstract

The 15century in the history of Korean thought was the period that newly imported Noe-Confucianism had been accepted and rooted on this land in the circumstances of that history. This period have had very important meaning in the point that the Korean Confucianism developed its own distinct characteristics from Chinese Confucianism passing through the history of the day. Without appropriate achievements in both sides of theory and practice, that historical development was actually impossible. Nevertheless we have focussed on the achievements of practical side, and undervalued the theoretical side. They expresses the reason with two points. The one is because there actually haven't been much achievement in theory. And the other is result from the fact that we have approached the problem with a viewpoint of authenticity lineage. At this point, Jiniljae Ryu Sung Jo is a good object of study. Ηe had not only made a typical confucian scholar in practice, but also achieved much product of study in theory. The reason why he haven't received proper attention was that he hadn't belonged to the lineage of authenticity. Ηe he had been in government service long, and failed to produced much disciples. And the most scholars of the day have tried to find out their own scholastic origins in the authenticity lineage, that's because they wanted to hold superior position in learning and ideology. More to the point, this tendency has had influence on the academic world up to thi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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