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의 실학적 토대로서의 경학관(經學觀) 연구
The Influence of Ryu Seong-ryong’s Classical Learning on Practical Lea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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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류성룡의 경학관이 훗날 조선후기 실학의 토대이자 단초(端初)를 제공하였다는 점에 초점을 두어 고찰한 것이다. 그는 당시 조선이 처한 고난 속에서도 어느 한쪽만을 두둔하는 편협된 사고를 지양하고, 또한 ‘나만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배타성도 경계하였다. 류성룡은 철저하리만큼 학문이 현실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였고, 본 논고는 이러한 그의 입론(立論)의근거를 경학관을 통해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본 논문의 문제의식은 류성룡에 관한 그간의 연구가 주로 정치ㆍ경제ㆍ군사ㆍ 외교 등 소위 ‘경세학’ 쪽에 치우쳐 온 반면에, 그의 세계관을 본질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경학’이나 ‘철학’ 방면에서의 연구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서부터출발했다. 사실, 류성룡의 경학과 철학을 연구하기 위한 그의 유작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영역을 연구한다는 자체가 지난(至難)한 작업임에 분명하다. 특히 류성룡은 수년 동안 고위 관직을 거치면서 대내외적으로 치적이 많아, 순수한 학자로서의 경전 주해서나, 또는 타자와의 철학적 논쟁을 다루었던 흔적이 많지 않은 것은 일면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조선의 대부분 유자들이 자신의 입론 근거를 내세울 때마다 반드시 경서에 대한 관점부터 밝혔다는 근본적 물음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류성룡의 문집에서 소위 경학을 다루었던 원전을 추출하여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하였다. 첫째, 류성룡의 경학관은 『집주』와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양명학을 ‘사이비’라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교각살우’의 어리석은 결과를 낳았을 뿐이라 간주했다. 이러한 그의 세계관은 분명 당대의 관료나 지식인들과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의 학문은 뜬구름을 잡는다거나, 혹은 지나치게 고답적이고 이상적인 것만을 추구한다거나, 혹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둘째, 류성룡은 퇴계 문하에서 수학하였지만, 퇴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름’ 의 ‘똘레랑스’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는 중국의 고전적⋅전통적⋅주자학적 사서 해석을 거부했다. 따라서 ‘생각함[思]’을 농부[田]가 풍성한 결실을 꿈꾸는마음[心]으로 경작하듯이, 학자 역시 마음먹기[思]에 따라 훗날 실용적⋅현실적 결과물을 반드시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그는 『논어』 해석을 통해 배움과 실천의 ‘조화’를 강조했고, 『맹자』의 요체는 오직 ‘마음’의 끝없는 반성[自省]이라 여겼다. 끝으로 『중용』의 핵심은 마음의 주재(主宰)가 곧 중화(中 和)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류성룡은 우리 조선이 당면한 현실적 문제를 직시하고자 했으며, 소위 ‘꼰대’라 불리는 골수 주자학자들의 배타성과 폐쇄성도 경계하려는 객관적인 학문관을 견지하였다. 이러한 그의 현실 중심의 세계관은 훗날 조선 관료들에게 ‘실용성’과 ‘실천성’을 강조하는 실학의 단초(端初)를 제공한 것으로볼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argues that Ryu Seong-ryong’s position in Confucian classical learning inspired later Joseon scholars of Practical Learning (Silhak, 實學). Despite the challenges and difficulties of the late-sixteenth century Joseon, Ryu Seong-ryong tried to overcome the partisan mode of thinking and guarded against solipsism and dogmatism. He was painstakingly concerned about how to apply the principles of learning to the pressing needs of realities. In this perspective, this article inquires into his position in classical learning. Scholarship to date has mainly focused on his statecraft thought and institutional plans; as a result, his worldview and philosophical position in classical learning has been neglected. First of all, Ryu Seong-ryong’s view of classical learning differed from Zhu Xi’s (朱熹, 1130-1200) commentary; at the same time, he did not consider Wang Yangming’s (王陽明, 1472-1529) learning as being completely unorthodox although he thought Wang Yangming’s criticism fell into the fallacy of “killing the ox instead of correcting its horn.” Second, although he studied under the guidance of Yi Yi (李珥, 15092-1570), Ryu Seong-ryong’s scholarship was more tolerant toward different ideas. Instead of dogmatically following Zhu Xi’s learning, he thought that it was necessary for a scholar to produce practical results in real life. Third, with his interpretation of the Confucian Analects, he emphasized the harmonious integration of learning and practice; as to the Mencius, he articulated the idea that it w as the classic of endless reflections on the mind; as to the Book of Doctrine, he argued that the sovereignty of the mind is the source of centrality and harmony. Inclusion, this article argues that with his practical focus on the pressing issues of realities as well as his guard against the exclusivity and closeness of Neo-Confucians, Ryu Seong-ryong inspired later scholars of Practical Lea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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