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 장현광의 도맥道脈과퇴계학 전승의 문제 연구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Yeoheonhak(the Thoughts of Yeoheon) and Toegyehak(the Thoughts of Toe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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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여헌 장현광의 철학사상이 지닌 도맥과 성리설의 성격, 퇴계학의 전환과 계승 문제 그리고 그의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살펴본 논문이다. 여헌이 조선유학사의 핵심적 논쟁인 리발기발설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고 있었고, 사단칠정설에 대한 깊이 있는 견해를 가졌음에도 경위설과 분합설 등으로 무장하여 새로운 해석체계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후대인들이 평가하는 퇴계학이냐 율곡학이냐 하는 문제와는 전혀무관하게 소강절의 선천후천학과 주희의 성리학을 직접적으로 계승하여 획전畫前의 태극지리를 언급하고 주희의 성발위정性發爲情설을 그대로 사단칠정에 적용하여 사단칠정 모두를 리발理發로 규정하는 등 여헌스스로 자신의 도맥을 송대의 주돈이나 소옹 그리고 주희에게 직접 연결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여헌이 별다른 사승 없이 이른나이에 자득의 경지에 오르고 여헌 자신이 적극적으로 누군가의 학맥에 편입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던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헌은 영남이라는 지역적 한계 속에 살았고 인조仁祖 이후영남의 산림山林으로서 퇴계학을 중심으로 영남 남인들을 규합해야 하는 사회정치적 요청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사단칠정이 모두 리지발理之發이라고 주장한 것은 비록 주희의 성발위정의 프레임 속에서 직접도출한 것일 수 있겠으나, 조선의 풍토에서 퇴계의 리발기발의 호발설互發說이 탄생하지 않았더라면 나오지 못했을 주장이다. 여헌은 이른 나이에 자득하여 도맥을 주희에게서 직접 전수하였으나퇴계 호발설의 영향권에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리발설을더 구체화하고 세분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체계를 수립하게 되었다고할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is a research for the academic relationship between the ideas and philosophy of Yeoheon Jang Hyeon-gwang(旅軒 張顯光, 1554~1637) and those of Toegye Yi Hwang(退溪 李滉, 1501~1570). Even though Yeoheon had profound knowledges about the Theory of Li-Qi(Principle and material Substance) and the Four- Seven Debate, he established his own system of thought using other concepts. He made a philosophical status of his own without apparent teachers at an early age, and actively didn't try to enter into academic systems of anyone's studies. Instead, he tried to connect the line of his philosophy to that of Zhou Dunyi(周敦頤), Shao Yong(邵雍) and Zhu Xi(朱熹) of the Song Dynasty. However, the thoughts of Yeoheon could not be fully explained only by his own academic aims. He lived in the special local of Yeongnam(嶺南; 慶尙道), and he was socially and politically asked to head up Yeongnam's Southerners after the King Injo(仁祖). He claimed that all of Four Beginnings(四端) and Seven Emotions (七情) come from Li(理, Principle). Even though this claim was originated from a few mentions of Zhu Xi, we can not imagine that the claim could come out without Toegye's theory. Although Yeoheon directly acquired the Neo-confucianism of Zhu Xi in his early age, he could not escaped from the academic influences of Toegye's theory. Nevertheless, he succeeded in establishing his own unique learning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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