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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교 문화의 관점에서 본 조선과 중국

Joseon and China from the Perspective ofConfucian Culture of Ritual Norms(禮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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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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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대왕조는 전통적으로 동이-고려-조선에 이르는 동국東國을 ‘예의지방’으로 부르면서 중화문명을 수용하여 동화된 문화적 동화의 모범으로 인정했으며, 동국도 이에 호응하여 중국을 문화적 중심과 정치적 정점으로 인정했다. 중국의 문화적 동화전략은 정치적 번방을 문화적으로 동화시켜서 문화적으로도 종속된 우호관계를 겨냥한 것이었다. 중국인들의 예교적 시선에서 보면, 『고려도경』에 잘 나타나듯이 고려시대까지는 중화문명의 동화와 오랑캐 풍속이 병존하다가, 조선에 와서는 문화적 동화가 전면화되어 소중화로 불릴 만큼 내면화되어 『조선부』 이후 중국 사신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 전기 최부崔溥의 『표해록』를 계기로 조선 사람들은 예교의 대상이 아니라 예교의 주체로서 중국 문화가 비유교적 의례의 실천과 상업적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문제점 등을 비평적으로 성찰함으로써 문화적 차별화 양상을 보여주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다양한 연행록에서 잘 나타나듯이 중국이 정치적 정점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을 문화적으로 저변화함으로써 문화적 중심으로서 ‘예의조선’의 자부심을 고조시키는 한편, 청나라를 더 이상 문화적 야만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현실적 상황 변화로 인해 예교적 시선도 일정하게 균형을 취하여 현실주의적으로 객관화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Abstract

Traditionally, Chinese dynasties called Dongguk(東國), which includes Dongi(東夷), Goryeo(高麗), and Joseon(朝鮮) dynasties, as a “region of ritual norms’, and recognized it as a model of cultural assimilation by embracing China’s civilization, and in response, Dongguk accepted China as a cultural center and a political climax. The cultural assimilation strategy of China aimed at establishing culturally-dependent friendly relations with a political periphery by assimilating the periphery with its culture. From the Chinese perspective of ritual norms, the assimilation of Chinese civilization and the barbarian custom coexisted by the Goryeo era, as shown well in <Goryeo Dogyeong (高麗圖經)>. However, the cultural assimilation developed in full-scale during the era of Joseon, and internalized to an extent that Joseon was called as ‘small China’, and praised by Chinese envoys since <Joseonbu (朝鮮賦)>. However, <Pyohaerok (漂海錄)> written by Choe Bu(崔溥) in the early Joseon era, which observed critically the realization of non-Confucian rituals and the excessive pursuit of commercial benefits in the Chinese culture and claimed that people of Joseon were not an object of but a subject to the realization of ritual norms, began to show a cultural differentiation. In the late Joseon era, as described in various travelogues to China, Joseon still recognized China as a political climax, but marginalized China in cultural terms resulting in enhanced pride as “ritualized Joseon” or a cultural center. Meanwhile, given the change in reality that Joseon could not define Qing as a cultural barbarism, its ritual perspective showed a trend of objectification by taking a balanced 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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