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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당이문」의 시나리오 형성 방식과 영화사적 위상에 대한 재고再考

A reconsideration on the scenario formation methodand film history of Gaehwadang I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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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1932년에 발표된 「개화당이문開化黨異聞」은 당시 영화계에서 주목되는 작품이었고, 나운규의 영화 일대기에서도 관찰을 요하는 영화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한국 영화사에서 이 「개화당이문」에 대한 연구와 분석은 표피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이유는 필름의 부족과 대본의 부재로 요약될 수 있으며, 당시의 평가와 관련자들의 인상에 지나치게 의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의 필름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 그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구 과정에서 피상적으로 다루어지거나 선입견에 의해 재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기존 연구와는 다른 입장에서, 「개화당이문」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개화당이문」의 시나리오(시놉시스)가 발굴되었고 이를 통해 대략적인 형태의 사건 진행과 플롯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운규의 관련 회고, 시나리오를 구성할 때 참조되었던 원천 자료, 그리고 관련 사진과 각종 증언이 발견되면서, 「개화당이문」(시나리오 명칭 「개화당」)의 전모를 살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본 연구는 이를 바탕으로 「개화당이문」의 형식적, 미학적 특징을 살피고,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개화당이문」이 정당하게 놓여야 할 한국(조선) 영화사에서의 위상에 대해 논구하고자 했다.

Abstract

Gaehwadang Imun announced in 1932 was a work that attracted attention in the Korean(Choseon) film world at that time, and it was a movie that required observation even at the movie biography on Na Un-kyoo. However, to date, the research and analysis of this Gaehwadang Imun in the history of Korean movies has remained epidermal. The reason is because of lack of film and lack of script. Meanwhile, another reason is based on the evaluation of the time and the impressions of the people concerned. It is difficult to confirm the reality of the film work if the film is not actually left. So in the course of the research, the work is superficially treated, or not properly assessed by prejudice. Therefore, from a standpoint different from the existing research, it is necessary to access Gaehwadang Imun. Fortunately, the scenario(synopsis) of Gaehwadang Imun has been discovered, which allows us to confirm the approximate form of incident progress and the overall flow of the plot. In addition to the related retrospective of Na Un-kyoo, the source documents which were referred to when constructing the scenario, related photographs and various testimonies were discovered. Based on these evidence it is necessary to see the full context of Gaehwadang Imun, naturally the basis was secured for the chance of being able to do this study. In this research, I explored the form and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Gaehwadang Imun, and based on these results, I discussed the reasonable status of Korean film Gaehwadang Imun in the history of Korean film.

참고문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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