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년대 중반 고구려의 대외전략과 대신라공세對新羅攻勢의 배경
Foreign strategy of Koguryo in Middle 650s and background of Shilla at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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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년 정월, 고구려는 말갈병靺鞨兵을 동원하고, 백제와 연합군을 결성해 신라 북변北邊의 33성을 공취했다. 이에 신라는 즉각 당唐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했으며, 당 역시 곧바로 대응에 나서 이해 5월 정명진程名振이 이끄는 당군이 요하遼河를 건너 귀단수貴端水에서 고구려군과 접전했다. 이 사실은 조선후기의 실학자요, 역사학자였던 안정복安鼎福이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삼국의 병화가 이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라고 논평할 만큼 삼국 간의 역관계, 더 나아가 7세기 중엽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를 뚜렷하게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나당연합군의 결성이 촉발되었고, 이는 이후 전개된 동아시아 국제전의 윤곽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655년 고구려‧백제연합군(이하 高‧百聯合軍)의 대신라공세對新羅攻勢에 대한 종래 국내학계의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없었다. 대체로 7세기 동북아시아 국제질서를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로 단편적으로 언급되는 수준이었으며, 고‧백연합군의 결성과 대신라공세 동인動因 역시 백제 내부의 필요성에 따른 것으로 보는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공세의 또 다른 당사국인 고구려의 입장을 살피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그러면 655년 고구려가 전격적으로 대신라공세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더욱이 당시 고구려가 신라를 공격할 경우 당의 재침 위협이 동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었다. 그럼에도 고구려가 말갈‧백제와 연합군을 결성해 대대적인 신라공세에 나섰으며, 자연 그 배경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배경은 바로 650년대 중반 고구려의 대외전략과 연관시켜 살펴보아야 한다. 650년대 중반에 이르러 고구려는 매우 공세적인 대외행보를 드러내고 있다. 650년대 초, 거란지역으로의 진출을 감행한 고구려는 654년 당에 복속한 거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나섰으며, 이어 이듬해에는 신라를 공격했던 것이다. 연이어 656년에는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대규모의 사절을 왜倭에 파견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고구려의 대외행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이 무렵 고구려의 대외전략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해주고 있는데, 당시 고구려 지배세력의 발언과 이 같은 상황 전개로 보아 650년대 중반 고구려는 ‘독자세력권의 회복’을 대외전략의 하나로 채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서‧북방면에서의 대외적인 교착상황과 함께 당의 삼국 간 역관계力關係 개입에 따른 위협에 직면해 있었던 고구려는 ‘독자세력권의 회복’이라는 공세적인 대외전략을 통해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옛 고구려 독자세력권의 한 축이었던 거란방면으로의 진출이 654년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고구려는 남방으로 그 예봉을 돌렸고, 이것이 바로 655년 고구려가 백제‧말갈과 연합해 대대적인 신라 공격을 도모한 동인이었다.
Abstract
Koguryo(高句麗) united with Baekje(百濟) and Malgal(靺鞨) to attack Shilla(新羅) at 655. This an attack promoted to organize the Allied Forces of Tang(唐) and Shilla(羅唐聯合軍). Moreover this an attack is consider as the first step of international order reorganization in 7th century middles the East Asia. Therefore Shilla an attack by the Ko-Bae Combined Forces(高‧百聯合軍) is important in understanding the changing international circumstances at 7th century middles. But the study of the meanwhile have neglected about this Shilla an attack at 655. Especially, did not try to observe about stance of Koguryo which lead an attack. Well, motive in which Koguryo attacks Shilla is associated with foreign strategy of this time koguryo. At that time the foreign strategy of koguryo is focused in restoration of independent the scope of influence. This point is identified through statement that the ruling powers of Koguryo did. Actually in the early 650s Koguryo attacks to advance in direction Khitan(契丹) of the west. Next year, Koguryo attacks Shilla. Consecutively Koguryo dispatched a large-scale delegation to Wa(倭). The reason why Koguryo adopted foreign strategy like this could find to a foreign predicament and diplomatic intervention of Tang about three countries(三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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