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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대 고구려의 대남방 전략

The southern strategy of Goguryeo in the 6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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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660년 7월, 백제가 멸망하자 주변 諸國이 변화된 국제정세를 적극 활용하려 한 것과는 달리 고구려는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인 660년 10월경부터 6개월의 간극을 두고 신라의 七重城과 北漢山城 등을 차례로 공격하였다. 당의 위협이 점증되는 와중에 고구려가 대신라 공세를 추진했다는 점에서 주의를 끈다. 이에 대해 기존 연구에서는 ‘麗․濟連和’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되었던 정책으로 해석해 왔으나, 自國의 國益 추구와 동떨어진 조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고구려는 신라가 백제 고지에서 백제부흥군 진압에 몰두했던 시기에 칠중성을 공략하여 성공리에 마무리하였다. 나아가 靺鞨까지 동원하여 북한산성을 공격했으나 괄목할 만한 성과는 얻지 못하였다. 고구려가 두 성을 공격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는 두 성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위치와 역할 때문이다. 특히 두 성을 공격함으로써 신라의 政情을 불안케 하여 당과의 밀착을 쉽게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후로 고구려는 멸망할 때까지 더 이상 신라를 침공하지 않았다. 무력 침공이 아닌 대외 교섭을 통한 대신라 견제 정책을 추진하였다. 백제가 교섭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황에서 倭만이 부각되었고, 고구려는 이전부터 추진해 온 왜와의 교섭을 보다 적극화하여 신라를 간접 견제하려 하였다. 따라서 고구려가 북한산성 전투 이후로 대신라 공세를 중단했다기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겠다.

Abstract

In July 660, when Baekje was overthrown, Goguryeo did not take much action, as the neighboring countries tried to take advantage of the changed international situation. Then, after a certain period of time, in October of 660, there was a gap of six months and attacked in turn the Chiljungseong(七重城) of Silla and the Bukhansanseong(北漢山城) of Silla. It is noted that Goguryeo attacked Silla during the ascension of Tang's threat. In the previous research, it has been interpreted as a policy that was promoted on the extension of ‘the coalition theory between Goguryeo and Baekje(麗․濟連和說)’, but I don't think it is apart from pursuing its own national interests. Goguryeo succeeded in succeeding in attacking the Chiljungseong in the period when Silla concentrated on suppressing the Baekje revival army in the old land of Baekje. Furthermore, Goguryeo mobilized up to Malgal and attacked the Bukhansanseong but did not achieve remarkable achievement. The reason why Goguryeo selected two castles for attack is because of their geopolitical position and role. In particular, it is important not to easily allow contact with Tang by making the situation of Silla uncertain by attacking two castles. Since then, Goguryeo has not invaded Silla anymore until his country was destroyed. Goguryeo pursued a policy of restraining Silla through external negotiations, not by invading forces. In the situation where Baekje was completely excluded from the negotiation target, only Wae(倭) was highlighted, Goguryeo tried to indirectly control Silla by aggressively negotiating with the cause, which had been pursued previously.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Goguryeo has been more interested in the Silla than it had stopped the battle since the battle of the Bukhansan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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