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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충신 추모와 증시贈諡 양상의 다양화

The Commemoration of Loyal Subjects and the Diversification of the Conferral of a Posthumous Tit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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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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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조선후기 국가와 국왕이 신하를 현창하는 데 시호를 활용하며 발생한 다양한 양상을 검토한다. 증시贈諡의 마지막 절차인 선시宣諡와 연시延諡는 본래 시호교지를 반사頒賜할 때 연이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의례적이고 사치스러운 행사로 인식되어 온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선초기에는 대신의 사망 직후 초상을 치르는 가운데시호 수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시례賜諡禮 라는 형태로 간소한 의식만이 이루어졌다. 그러다 17세기에 이르러 삼년상까지 끝난 이후 시호가 결정되는 사례가 늘어나며 더 이상 흉례凶禮가 아닌 길례吉禮로 연시례가 거행되기 시작하였다. 연시는 처음 왕족과 외척에게 행해지다 점차 대신과 충신에게도 확대되었다. 숙종대 이후 죽은 지 오래된 이전 시대의 인물에게 추시追諡하면서 시호 결정과 반사가 시기적으로 분리되는 사례가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가문이 몰락하여 후손을 찾을 수 없거나, 후손이 있더라도 시호 교지를 맞이할 수 없는 처지의 인물에게도 시호를 내리기 위해 선시와 치제致祭 등을 활용하는 양상을 띤다. 이렇듯 국가가 시호 반사를 주도하면서 대대적인 행사를 지원한 것은 신료와 백성들에게 헌신과 충을 사회적으로 제시하고 강조하고자 한 것이었다.

Abstract

This paper explores the diverse ways in which the state and the kings used posthumous titles (諡號) to commemorate their loyal subject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ceremonies for announcing a posthumous title (宣諡) and receiving the posthumous title (延諡), the last two steps of the conferral of a posthumous title (贈諡), were originally performed consecutively while conferring the king’s decree regarding the title and tended to be considered ceremonial and luxurious event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however, only a simple ceremony was conducted in the form of conferring a posthumous title (賜諡禮), as a posthumous title was conferred during the funeral service immediately after the death of a loyal minister. By the 17th century, there was an increase in cases where a posthumous title was determined after a three-year funeral, the ceremony of receiving a posthumous title (延諡禮) transitioned from being a mournful ritual (凶禮) to a celebratory one (吉禮). Initially conducted for royalty and relatives on the mother’s side, the ceremony of receiving a posthumous title gradually expanded to include ministers and loyal subjects. After the reign of King Sukjong, the decision and conferral of a posthumous title were increasingly separated in time, as it was often granted to figures from earlier eras who had long since died. In this process, the announcement of a posthumous title and rituals conducted by the state with rites and offerings (致祭) were utilized to grant a posthumous title to figures whose descendants could not be found due to the collapse of their families or whose descendants were unable to receive the king’s decree regarding the title even if they had descendants. The state’s leading role in the conferral of posthumous titles aimed to emphasize dedication and loyalty to the subjects and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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