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과거청산의 법적 구조
Legal Structure of Righting the Wrongs of the Past between Kore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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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65년에 한국과 일본은, 14년에 가까운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된 회담을 거쳐,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등을 체결함으로써, ‘1965년 체제’라고 불릴 수 있는, 한일 과거청산에 관한 하나의 법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기본조약」의 체결에도 불구하고 1910년 한일조약의 효력에 관한 합의는 도출되지 못했으며, 「청구권협정」의 체결에도 불구하고 청구권이 어떻게 해결된 것인지에 대한 합의도 도출되지 못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이어진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대한 한일 양국의 역사관 차이에 기인하는 이러한 애매성 때문에, ‘1965년 체제’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냉전의 산물이기도 했던 ‘1965년 체제’는 이후 25년간 이어진 냉전 기간 동안에는 별다른도전을 받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냉전 종식 이후인 1990년대에 들어와, 한국인피해자들의 강한 과거청산 요구에 직면하여, ‘1965년 체제’에는 균열이 생기게 되었다. 일본정부가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지배 책임을 인정함으로써,그 책임을 배제한 ‘1965년 체제’에는 우선 일본 측에 의해 균열이 생기게 되었다. 나아가 한국 정부가 2005년의 「민관공동위원회 결정」를 통해,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하여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선언함으로써 그 법적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와의 간극이 더욱 벌어지게 된 결과, ‘1965년 체제’의 균열은 더욱 심각한 것이 되었다. 그 위에, 2010년대에 들어와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획기적인 결정과 판결을 내림으로써 ‘1965년 체제’는 그 수명을 다하기 직전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2011년에 한국의헌법재판소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한일간에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청구권협정」 제3조의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2012년에 한국의 대법원은,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적인 강점”이며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소멸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1965년 체제’를 둘러싼 한일간의 대립은 결정적인 것이 되었으며, 그 결과 ‘1965년 체제’는 붕괴 직전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일 과거청산의 법적 구조와 관련하여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1965년 체제’가 그수명을 다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식민지지배 책임’을 전면적으로 청산하는 새로운 법적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그것이다. ‘1965년 체제’ 50주년이 되는 2015년은 그 점에서 주목되고 준비되어야 할 해이다.
Abstract
In 1965, a legal structure of righting the wrongs of the past between Korea and Japan was built, based on the Treaty on Basic Relations and the Agreement on the Settlement of Problems Concerning Property and Claims(hereinafter “the Agreement”), which were concluded after a 14-year long negotiation. But, despite the Treaty on Basic Relations, no agreement was achieved on the validity of 1910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Despite the Agreement, no agreement was achieved on how the claims had been settled. ‘The 1965 System’ made an unstable start, because of these ambiguities, which stemmed from the conflict of views on the characteristic of the Japanese rule of the Korean Peninsula from 1910 to 1945, ‘The 1965 System’, which was a product of the Cold War, maintained unchallenged during the Cold War years. However, after the cessation of the Cold War, Korean victims’ fierce struggle for the righting the wrongs of the past caused cracks in ‘the 1965 System’. When the Japanese government accepted the responsibility for the colonial rule of the Korean Peninsula by the ‘Murayama Statement’ in 1995, ‘1965 System’ cracked from the Japanese side. When the Korean government declared that despite the Agreement “the legal responsibility of the Japanese government still remains” regarding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issue, the crack in ‘the 1965 System’ grew all the more serious, because the declaration made the gap between Korea and Japan widen. At present, hit by the epoch-making judgements of the Constitutional Court and the Supreme Court of Korea, ‘the 1965 System’ is on the verge of collapse. In 2011, the Constitutional Court recognized the fact that there was an interpretation dispute between Korea and Japan about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issue, and declared that it is unconstitutional that the Korean government did not resolve the dispute according to the article 3 of the Agreement. In 2012, the Supreme Court declared that the Japanese rule of the Korean Peninsula was “an illegal occupation” and that despite the Agreement, the claims deriving from “the unlawful acts directly connected to the colonial rule” were not extinguished. It is obvious that the conflict between Korea and Japan regarding ‘the 1965 System’ became dramatic by these declarations. It is clear where we should aim. We should declare officially that ‘the 1965 System’ have had its day, and establish a new legal structure which can totally liquidate the colonial rule. The year 2015, which will be the 50th anniversary of ‘the 1965 System’, should be the starting point of the new legal stru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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