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소지왕대의 정치적 변동 : 사금갑설화를 중심으로
Political Changes in the reign of King Soji of Shilla : Based on the Sageumgab Tale
0
조회
0
다운로드
8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삼국유사』 기이편에는 신라 소지왕대 기록으로 사금갑설화가 전한다. 말하는 쥐, 연못 속에서 나온 노인 등 등장인물이 예사롭지 않고 이야기의전개도 난해하다. 이러한 사금갑설화의 배경에는 소지왕대 왕실에서 벌어진 ‘모종의 사건’이 담겨 있다. 이글에서는 이 모종의 사건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먼저 소지왕대 중앙정치를 주도한 세력을 검토하여 보았다. 실성왕을제거하고 즉위한 눌지왕은 중앙정치의 인적 기반이 부족하였다. 눌지왕은외국에 인질로 갔던 복호와 미사흔을 불러들여 자신을 보좌하도록 하였다. 눌지왕대에 복호가 파호갈문왕에 책봉되었고, 기보(습보)는 지도로갈문왕의 아버지였다. 자비왕이 파호갈문왕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일찍사망하였고, 미사흔녀를 다음 왕비로 맞아 소지왕을 얻었다. 이어서 즉위한 소지왕은 미사흔계로 보이는 내숙의 딸 선혜부인을 왕비로 맞아들였으나 후사를 얻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사금갑설화를 정치적인 측면에서 해석하여 보았다. 소지왕 10년 정월에 궁주와 내전분수승이 처형당하였다. 내전분수승은 소지왕대 왕실의 복을 빌어주던 승려였고, 궁주는 국왕에 의해 책봉된 ○○궁의 안주인으로 기보갈문왕의 딸이었다. 소지왕이 천천정에 행차하던 길에 얻은글은 일관에 의해 역모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사건을 일으킨 일관의 배후세력으로 미사흔계를 지목하였다. 선혜부인에게서 왕자가 태어나지 않아 눌지왕 직계의 단절이 점차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다음 왕위를 다툴 유력한 세력은 눌지왕 방계인 지도로갈문왕과 미사흔계였다. 당시 지도로는 갈문왕으로서 소지왕대 전반부의 정치를 주도하였고, 누이동생이 소지왕과 혼인하였으므로 그 정치적 위상이 대단하였다. 미사흔계가지도로갈문왕을 견제하려고 일으킨 사건이 바로 ‘모종의 사건’이었다. 이사건으로 지도로는 소지왕과 정치적으로 결별하였다. 소지왕은 왕22년 날이군 순수 도중에 만난 벽화를 몰래 불러들여 궁중 별실에 두고 아들을얻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지왕의 행위는 오히려 소지왕 축출의 명분을 제공하고 말았다.
Abstract
Sageumgab Tale was recorded in one part, named Kiyi, in 『SamKukYusa』 in the reign of King Soji of Shilla. This tale has not only very special characters,such as a talking mouse and an old man from a pond but also difficult storylines. It seems to have had certain affairs in the background in the reign of King Soji. This article will show deep inside the tale. Firstly, let's look into the people who had tremendous political power in the central government of King Soji's day. King Nulji, King Soji's grandfather, didn't have enough human resources when he ascended the throne after killing King Silsung. So he called his two brothers, Bokho and Misaheun, in order to assist him. In his time, Bokho was invested as Paho Galmunwang and Gibo (also called Seupbo),Bokho's son, was the father of Jidoro Galmunwang. King Jabi and princess of Paho Galmunwang had no grown sons, so King Jabi married a daughter of Misaheun and had a son, who became King Soji. King Soji likewise had no sons after marrying Queen Sunhye, daughter of Naesuk. Secondly, let's see the political aspects. Two people were executed during the reign of King Soji at his 10th New Year. One was Kungju, King Soji's concubine,installed as the lady of the palace by the king, as well as a daughter of Kibo Galmunwang, and the other was Naejeonbunsuseung, a monk in the palace who prayed to Buddha for the royal family. At that time, a letter King Soji received while visiting Cheonchungjung was interpreted to imply treason by Il-kwan, King's astrologer. The people in Misaheun's party were arrested on suspicion of this conspiracy. In addition, the royal family faced to the termination of King Nulji's lineage, as King Soji had no sons. Thus only Misaheun and Jidoro Galmunwang's parties were left to inherit the throne as the court of King Nulji. At that time Jidoro led all the national politics as Galmunwang in the reign of King Soji, and his political power and stature were raised very high, as his sister had married King Soji. Thus Misaheun's party made 'a certain affair' so as to prevent Jidoro's people from abusing power. As a result, Jidoro broke off all political connection with King Soji. In the meantime, however, King Soji secretly arranged a special place inside the palace for a girl, named Byeokhwa, whom he met during his inspection of Nal-yi Province in his 22nd year and finally had a son. However,this caused him got driven out.
참고문헌 (38)
- 강종훈, "신라상고사연구" (2000), 서울대학교출판부
- 김두진, "한국고대의 건국신화와 제의" (1999), 일조각
- 김미현, "혼인과 연애의 풍속도" (2005), 두산동아
- 김재경, "신라 토착신앙과 불교의 융합사상사 연구" (2007), 민족사
- 김창현, "고려의 여성과 문화" (2007), 신서원
- 나희라, "신라의 국가제사" (2003), 지식산업사
- 서의식, "新羅의 政治構造와 身分編制" (2010), 혜안
- 신종원, "삼국유사 새로 읽기(1)" (2004), 일지사
- 신종원, "신라초기불교사연구" (1992), 민족사
- 이기동,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 (1984), 일조각
-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1974), 일조각
- 이종욱, "신라상대왕위계승연구" (1980), 영남대학교출판부
- 장창은,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2008), 신서원
- 정용숙, "고려시대의 后妃" (1992), 민음사
- 채미하, "신라 국가제사와 왕권" (2008), 도서출판 혜안
- 최광식, "한국 고대의 토착신앙과 불교" (2007), 고려대학교출판부
- 최재석, "한국가족제도사연구" (1983), 일지사
- 강은해, "<사금갑> 설화 연구", 어문학, 58 (1996)
- 김두진, "신라 공인불교의 사상과 그 정치사적 의미, In 두계이병도박사 구순기념 한국사학논총" (1987), 일조각
- 김수미, "신라 炤知王代의 牧民官 천거와 정치 세력의 변화", 역사학연구, (41), pp.1~29 (2011), 호남사학회
- 김영남, "신라 소지왕대 <사금갑 사건>의 역사적 이해 :내전분수승과 궁주의 문제를 중심으로", 석사, pp.2008
- 김태식, "사금갑(射琴匣) 설화의 역사적 이해 - 『화랑세기』관련 기록과의 대비 검토 -", 민속학연구, (12), pp.103~138 (2003), 국립민속박물관
- 나희라, "射琴匣說話와 新羅의 王權儀禮", 역사문화연구, (37), pp.1~33 (2010), 역사문화연구소
- 박성천, "신라 지증왕의 즉위과정에 대한 연구", 경주문화연구, 6 (2003)
- 방선주, "고신라의 영계 및 타계관념: 종교문화사적 고찰", 합동논문집, 1 (1964)
- 徐永大, "韓國古代 神觀念의 社會的 意味", 박사, pp.1991
- 서영대, "한국고대의 종교직능자", 한국고대사연구, 12 (1997)
- 宣石悅, "麻立干時期의 王權과 葛文王", 신라문화, (22), pp.375~393 (2003), 신라문화연구소
- 우선정, "신라 마립간시대의 성립과 전개", 박사, pp.2011
- 우선정, "신라 소지왕대의 왕권강화와 정치적 변동", 대구사학, 102, pp.1~34 (2011), 대구사학회
- 魏英, "新羅 初傳佛敎의 展開過程 檢討", 신라문화, (20), pp.99~138 (2002), 신라문화연구소
- 윤진석, "5∼6세기 신라 사탁부 갈문왕", 대구사학, 100, pp.31~59 (2010), 대구사학회
- 윤진석, "신라 至都盧葛文王의 ‘攝政’", 한국고대사연구, (55), pp.71~107 (2009), 한국고대사학회
- 이경희, "사금갑 설화 연구 : 제의적 의미를 중심으로", 석사, pp.2005
- 李鍾泰, "三國時代의 「始祖」 認識과 그 變遷", 박사, 국사학, pp.1997
- 전성운, "<사금갑> 이야기의 수용 양상과 서술 태도", 한국민속학, 31 (1999)
- 조수학, "사금갑 설화연구", 인문연구, 7 (1985), 영남대인문과학연구소
- 주보돈, "한국 고대사회 속 여성의 지위", 계명사학, 21 (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