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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仁川 德積島 住民들의 거주 양상-金海 金氏 일가의 古文書 분석 사례-

Lives of Insular Residents in the Incheon Area in the 18th and the 19th Century -A Case Study of Kimhae Kim Family Papers, Deokjeok-do(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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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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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고문서 자료를 분석하여 18~19세기 仁川의 德積島에서 거주한 金海 金氏 일가의 생활 양태를 고찰한 것이다. 김해 김씨 일가는 조선 후기에 덕적도로 이주해 온 이후 자신들의 도서 생활과 관련한 56점의 고문서 자료를 남겼는데, 이 중 호적 관련 고문서가 48점으로 가장 많고 나머지 자료는 관리 임명 관련 고문서이다. 조선시대 고문서 자료가 거의 내륙 양반의 후손 집안에서 보존되어 학계에 소개되는 경향에 비추어볼 때, 도서 지역 더군다나 비양반 후손의 집안에서 60점에 가까운 고문서 자료가 보존되어 학계에 소개되는 것은 드문 일이라 하겠다. 덕분에 우리는 조선 후기 도서 주민의 생활 모습을 복원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첫째, 덕적도의 김해 김씨 일가의 先祖가 조선 후기 덕적도로 入島한 이후 가문이 번창하여 현재까지 덕적도 내 최대 가문을 이루고 있다. 先祖가 덕적도로 入島한 이유는 조선 후기 海賊의 출몰이 잦아지면서 조선 정부가 덕적도에 水軍鎭을 설치하고 주민들을 대거 입도시켜 海防을 강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한 때문으로 여겨진다. 둘째, 김해 김씨의 선조가 덕적도로 입도할 당시의 신분은 알 수 없었으나, 후손 집안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문서 자료들을 분석해 보면 평민신분층에서 중인신분층으로 신분을 상승시키려 노력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렇지만 19세기 말 준호구 자료에서까지 평민신분층 부녀자의 호칭인 ‘조이(召史)’를 기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평민 상층~중인 하층 정도의 신분을 지녔다고 판단하였다. 셋째, 조선시대의 대다수 호적 자료에는 嬰․幼兒 자녀를 기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는데 반하여, 이들 일가의 호적 자료에는 영유아, 특히 女兒까지도 충실하게 호적에 기재하고 있었다. 이는 수군진이 설치된 다른 섬 지역의 호적 자료에서도 잘 확인되지 않는 특징이었다. 이로써 덕적도 김해 김씨 일가의 어린 자녀에 대한 인식이 매우 각별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ancient documents and census registers related to Kimhae(金海) Kim(金) family, Deokjeok-do(island) in the half of the 17th century. Its members left fifty-eight sheets of material about their lives in the island. Fifty-one of them are census registers, and the rest are certificates of appointment and agreements for deed, etc. In case of ancient documents of Joseon Dynasty era, almost of them have been preserved by descendants of yangban(兩班) who have lived inland area. It is very rare that insular people from non-yangban class have kept nearly sixty sheets of paper and introduce them to the academic world. Thanks to them, we were able to understand how they have lived during the latter period of Joseon Dynasty era.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of all, Kimhae Kim Family’s people moved to Deokjeok-do in the former period of the 18th century. Their migration was a government policy to reinforce maritime defense. The government set up the naval post and moved people there, when pirates began to appear frequently. Secondly, its people were originally commoners when they first moved to the island. Some of them were yangban or middle-class since mid-19th century, while rest of them were commoners even in the end of the 19th century. Generally speaking, the family had flourished ever since, and was able to be one of the strongest family in the island. Thirdly, it is common that children’s names were not written on the census register during the Joseon Dynasty era. However, people of Kimhae Kim family wrote all the names of their children, even their young daughter. There are no children's names on the census register written in other islands with the naval post. It seems that they had a very different idea about their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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