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18~19세기 西海 島嶼住民의 거주 양태 -翎島 거주 金海 金氏 일가의 古文書 자료 분석 사례-

Lives of Insular Residents in the Western Island Area in the 18th~19th Century -A Case Study of Kimhae Kim Family Papers, Baekryeong Island-

0

조회

0

다운로드

7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이 연구는 18세기 전반기에 황해도 내륙에서 백령도로 이주한 김해 김씨 일가의 약 130여 년 간의 생활 모습을 고문서 및 호적 자료를 분석하여 고찰한 것이다. 김해 김씨 일가는 백령도로 이주해 온 이후 자신들의 섬 생활을 관련된 58건의 고문서 자료를 남겼는데, 이 중 호적 관련 고문서가 51건이며, 나머지 자료는 관리 임명 관련 고문서 및 매매 관련 고문서이다. 조선시대 고문서 자료가 거의 내륙 양반의 후손 집안에서 보존되어 학계에 소개되는 경향에 비추어볼 때, 도서 지역 더군다나 비양반 후손의 집안에서 60건에 가까운 고문서 자료가 보존되어 학계에 소개되는 것은 드문 일이라 하겠다. 덕분에 우리는 조선 후기 도서 주민의 생활 모습을 복원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첫째, 백령도 김해 김씨 일가는 先祖가 18세기 전반기에 황해도 내륙 고을인 長淵에서 백령도로 入島한 이후 가문이 번창하여 현재까지 백령도 내 최대 가문을 이루고 있다. 先祖가 백령도로 入島한 이유는 조선 후기 海賊의 출몰이 잦아지면서 조선 정부가 백령도에 수군진을 설치하고 주민들을 대거 입도시켜 海防을 강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한 때문이었다. 둘째, 백령도 入島祖의 신분은 평민층이었으나 이후 그 후손들 중 일부는 19세기 중엽 이후 양반 및 중인층으로 신분을 상승시켰던 반면, 일부는 19세기 말까지도 평민층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김해 김씨 일가는 전반적으로 도서 지역 내에서는 최고 지배층 가운데 하나로 신분을 상승시켰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조선시대의 대다수 호적 자료에는 嬰幼兒 자녀를 기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는데 반하여, 이들 일가의 호적 자료에는 영유아, 특히 女兒까지도 충실하게 호적에 기재하고 있었다. 이는 수군진이 설치된 다른 섬 지역의 호적 자료에서도 잘 확인되지 않는 특징이었다. 이로써 백령도 김해 김씨 일가의 어린 자・녀에 대한 인식이 매우 각별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넷째, 일부 남아 있는 매매 관련 고문서 자료를 통해 김해 김씨 일가가 경제력 신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김해 김씨 일가는 수군진의 요직을 수행하면서 세금 징수 및 특산물 供出에 적잖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러한 권력과 정보, 노력이 누적되어 김해 김씨 김두기 일가는 현재 백령도의 최대 가문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 아닌가 보여 진다.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ancient documents and census registers related to Kimhae(金海) Kim(金) Family, who moved from interior Hwanghae Province to Baekryeong Island in the first half of the 18th century. Members of the family left fifty-eight sheets of material about their life in Baekryeong Island. Fifty-one of them are census registers, and the rest are certificates of appointment and agreements for deed, etc. In case of ancient documents of Joseon Dynasty era, almost of them have been preserved by descendants of yangban, who have lived inland area. It is very rare that insular people from non-yangban class have kept nearly sixty sheets of paper and introduce them to the academic world. Thanks to them, we were able to understand how insular people have lived during the latter period of Joseon Dynasty era.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of all, Kimhae Kim Family's people moved from Jangyeon(長淵), inland town of Hwanghae Province to Baekryeong Island. The family had flourished ever since, and now, it is the biggest family in the island. Secondly, its people were originally commoners when they first moved to the island, and in the 19th century, their descendants were middle-class men after they fulfilled their military duty under the Naval Post. The migration was a government policy to reinforce maritime defense. The Government set up the Naval Post and moved people there, when pirates began to appear frequently. Finally, it is common that children's names were not written on the census register during the Joseon Dynasty era. However, people of Kimhae Kim family wrote all the names of their children, even their young daughter. There are no children's names on the census register written in other islands with the Naval Post. It seems that they had a very different idea about their children.

참고문헌 (30)

  1. "朝鮮王朝實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2. "備邊司謄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3. "海東地圖(1750년대 초) 제2책" (1995), 서울대학교 규장각
  4. "輿地圖書(1760년 경) 下" (1973), 국사편찬위원회
  5. "戶口總數(1789년 경) 제5책" (1996), 서울대학교 규장각
  6. 金正浩, "『大東地志』(19세기 중엽) 권17" (1974), 한양대학교 국학연구원
  7. 政府財政顧問本部, "韓國戶口表", ~ (1907)
  8. 內部警務局, "民籍統計表", ~ (1910)
  9. "朝鮮の姓", 朝鮮總督府, ~ (1934)
  1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적(戶籍)" (2015), 국립중앙박물관
  11. 옹진군향리지편찬위원회, "甕津郡鄕里誌" (1996), 인천광역시 옹진군
  12. 吳柏陳, "白翎島" (1979), 샘터사
  13. 西海島嶼 綜合學術調査 報告書,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2003)
  14. 김경옥, "朝鮮後期 島嶼硏究" (2004), 혜안
  15. 임학성, "譯註 仁川島嶼地域의 地誌資料",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 (2010)
  16. 徐永大, "白翎島의 歷史", 西海島嶼民俗學, 1 (1985), 인하대학교 박물관
  17. 李光奎, "社會構造", 西海島嶼民俗學, 1 (1985), 인하대학교 박물관
  18. 김경옥, "族譜를 통해서 본 島嶼 移住民 硏究", 島嶼文化, 20 (2002),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19. 김경옥, "17~18세기 荏子島鎭의 설치와 牧場의 개간", 도서문화, 24 (2004)
  20. 김경옥, "朝鮮後期 古群山鎭 의 설치와 운영", 지방사와 지방문화, 10(1), pp.227~259 (2007), 역사문화학회
  21. 김경옥, "19세기 후반 靑山鎭丙子戶籍과 섬 주민들의 생활상", 역사민속학, (47), pp.284~314 (2015), 한국역사민속학회
  22. 임학성, "朝鮮後期 牧馬軍 一家의 身分變化-靈興島 平澤林氏家所傳 准戶口의 분석(Ⅰ)-", 한국학연구, 9 (1998),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3. 임학성, "朝鮮後期 牧馬軍 一家의 家勢變化-靈興島 林世載一家所傳 准戶口의 분석(Ⅱ)-", 한국학연구, 10 (1999)
  24. 임학성, "19세기 西海 設鎭島嶼지역의 戶籍자료를 통해서 본 戶政 및 住民의 특성-國史編纂委員會 소장 德積島 安東金氏家의 准戶口를 중심으로-", 仁荷史學, 10 (2003), 인하역사학회
  25. 임학성, "인천지역의 조선시대 戶籍資料에 대한 기초적 연구", 인천학연구, 2(1) (2003),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6. 임학성, "19세기 후반 仁川 島嶼지역의 주민 구성-1867년도 ‘永宗鎭戶籍大帳’의 사례 분석-", 한국학연구, (19), pp.153~187 (2008), 한국학연구소
  27. 임학성, "仁川 白翎島 거주 金海金氏家의 18~19세기 古文書 자료", 博物館誌, 15 (2012), 인하대학교박물관
  28. 임학성, "조선시기 京畿 島嶼지역의 空間認識 변화 -國營牧場 설치(조선 전기)에서 水軍鎭 설치(조선 후기)로-", 『도서문화』, (43), pp.39~64 (2014), 도서문화연구원
  29. 강석화, "조선후기 황해도 연안 방위체계", 한국문화, (38), pp.367~389 (2006),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0. 류창호, "서해 북부 해역에서의 해랑적 활동과 조선정부의 대응 - 해랑도 수토(1500년)에서 백령진 설치(1609년)까지", 탐라문화, (51), pp.69~107 (2016), 탐라문화연구원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