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공법의 두 가지 지평과 구한말 유학
Two Horizons of ‘Manguogongfa(萬國公法)’ and the Confucianism at the end of the Chosŏn Dynasty
0
조회
0
다운로드
7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만국공법’은 19세기 중후반 경 동아시아에서 국제법을 지칭하는 일반적 명칭이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1880년대 초에는 위정척사파 계열 유학자들이 만국공법을 배척했고 개화파 계열 유학자들이 그것을 수용ㆍ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1890년대 이후에는 위정척사파 유학자가 오히려 만국공법에 의거하여 일본 침략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정작 유길준 등 개화파 지식인은 그것을 부정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본고는 먼저 만국공법에는 국가주의적 지평과 자연법적 지평이 착종되어 있었다는 점을 밝혔다. 그 다음,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유학자는 공통으로 전통적 선입견에 따라 당대 세계정세를 중국 고대사에 비견하되, 개화파는 당대를 전국시대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여 만국공법을 전국시대의 종약(從約)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한 반면, 위정척사파 학자, 특히 최익현과 곽종석은 당대를 춘추시대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여 만국공법을 춘추시대의 맹약(盟約)으로 파악했다는 점을 밝혔다. 이를 통해 만국공법의 국가주의적 지평은 주로 개화파에 의해 받아들여졌던 반면, 자연법적 지평은 위정척사파 유학자에 의해 수용되었다는 점을 드러냈다. 만국공법 체제는 중국 중심의 천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인 만큼 만국공법의 수용은 위정척사파 학자의 세계 인식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했을 테지만, 이들은 『만국공법』이나 『공법회통』 내에 들어있던 자연법적 요소를 부각하여 그것을 유가적 가치로 해석하고, 더 나아가 유가적 가치에 따라 국제 관계를 구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른 한 편으로 그들은 만국공법 내의 국가주의적 지평에 대항했다. 조선의 위정척사파 지식인에게 헤겔적 의미의 근대 국가는 낯선 존재였다. 그들에게는 각 국(國)과 천하가 따라야 할 유가적 질서가 엄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중심의 봉건적 질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개화파 지식인은 오히려 국가주의적 지평에 호의적 태도를 보였다. 근대적 시각에서 보아 국가주의에 대항했던 위정척사파 학자의 견해는 시대착오적인 것이지만, 국가주의 및 그것과 결부된 제국주의가 초래한 20세기 전반기의 세계대전을 돌아보고, 그것과 상반되는 국제연맹 혹은 국제연합의 세계주의적 흐름이 다른 한편으로 존재하였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만국공법에 대한 유가적 재해석은 현대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In the latter half of nineteenth century, ‘Manguogongfa(萬國公法)’ was regarded as a term referring to international law. According to previous studies, in 1880’s conservative confucian scholars rejected ‘Manguogongfa’, while reformist confucian scholars insisting on accepting and utilizing it, but, since 1890, the former showed a tendency to point out the injustice of Japanese aggression against Chosŏn under According to previous studies, in 1880’s conservative confucian scholars rejected ‘Manguogongfa’, while the latter began to grasp it negatively. In this paper, firstly, it has been pointed out that the horizon of nationalism and the horizon of natural law were mixed in ‘Manguogongfa’. Then, this paper reveals that both reformist Confucian scholars and conservative Confucian scholars commonly viewed the world order at that time as Chinese ancient times, according to traditional preconceptions. Reformists, viewing the world at that time as the Warring States period(戰國時代) in Chinese history, looked upon ‘Manguogongfa’ as a international treaty(“從約”), while conservative scholars such as Choi Ik-hyeon and Gwak Jong-seok viewing the world as the Spring And The Autumn period(春秋時代), regarded that as an alliance treaty. Thorough this process, the horizon of nationalism in ‘Manguogongfa’ was largely accepted by reformist scholars, and that of natural law in it was embraced by conservative scholars. As the international law system at the time denied the past China-centered world system, the acceptance of ‘Manguogongfa’ would have caused a profound change in the world view of conservative Confucian scholars. However, they emphasized the elements of natural law contained in Manguogongfa or Gongfahuitong(公法會通), interpreted it as Confucian values, and conceived international relations in accordance with Confucian values. On the other hand, they fought against the horizon of nationalism in ‘Manguogongfa’, for the notion of modern nation that conforms to Hegel's theory of state was unfamiliar to them. From the modern perspective, the view of the conservative Confucian scholars who opposed nationalism seems to be anachronistic. However, looking at the twentieth century as a history of competing between nationalism and globalism, we can say that the Confucian reinterpretation of ‘Manguogongfa’ still has a modern meaning.
참고문헌 (28)
- 高宗實錄,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 DB, ~
- 春秋左傳,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 동양고전종합 DB, ~
- "한국근대사기초자료집", 한국근대사기초자료집[URL]
- "국립중앙도서관 전자판"[URL]
- 郭鍾錫, "한국문집총간 제340-344권(영인본)",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 DB, ~
- 金綺秀, "日東記游",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 DB, ~
- 魚允中, "從政年表"
- 李永, "日槎集略",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 DB, ~
- 崔益鉉, "한국문집총간 제325-326권(영인본)",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 DB, ~
- Henry Wheaton, "萬國公法" (1981), 아세아문화사
- Johann C. Bluntschli, "공법회통" (1981), 아세아문화사
- 강상규,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주권’과 ‘국제’ 개념의 탄생 - 『만국공법』의 판본 비교와 번역", 중국학보, (62), pp.112~134 (2010), 한국중국학회
- 강정인, "서양근대정치사상사" (2017), 책세상
- 구대열, "동ㆍ서양 국제질서관의 충돌과 새로운 질서관의 형성", 국제정치논총, 28(1) (1988), 한국국제정치학회
- 김두진, "동아시아 華夷걩의 變容과 朝日의 萬國公法수용의 他者認識", 한국정치학회보, 44(3), pp.5~25 (2010), 한국정치학회[DOI]
- 김봉진, "한성주보의 발행과 조선의 만국공법 수용", 사회와 역사, 4 (1986), 한국사회사학회
- 김용구, "만국공법" (2008), 소화
- 김세민, "衛正斥邪派의 萬國公法 認識", 江原史學, (18), pp.221~236 (2002), 강원사학회
- 김세민, "19세기말 開化派의 萬國公法 認識", 江原史學, (15), pp.161~183 (2000), 강원사학회
- 김현철, "개화기 서구 국제법의 수용과 근대국제질서의 인식", 한국정치연구, 14(1) (2005),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 류재곤, "한ㆍ일 양국의 만국공법 수용․인식", 한일관계사연구, 7 (1997), 한일관계사학회
- 민회수, "규장각 소장본으로 본 개항기 서양 국제법 서적의 수입과 간행", 규장각, (47), pp.201~229 (2015),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 박근갑, "한국에 건너온블룬칠리(Bluntschli) 국가학", 개념과 소통, (20), pp.349~451 (2017), 한림과학원[DOI]
- 우남숙, "한국 근대 국가론의 이론적 원형에 관한 연구-블룬츨리(J. K. Bluntschli)와 梁啓超의 有機體 국가론을 중심으로-", 한국정치외교사논총, 22(1) (2000)
- 이광린, "한국에 있어서의 만국공법의 수용과 그 영향", 동아연구, 1(1982) (1982),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 이근관, "동아시아에서의 유럽 국제법의 수용에 관한 고찰-만국공법의 번역을 중심으로", 서울국제법연구, 9(2) (2002), 서울국제법연구원
- 增淵龍夫, "中國古代の社會と國家" (1996), 岩波書店
- 花房卓爾, "春秋時代の列國における複數國の亡命者の同時受容について", 廣島大学留学生センタ-紀要, 12 (2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