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매일신보 연재소설 삽화란의 풍경 (2)-쓰루타 고로(鶴田吾郞, 1890~1969)와 새로운 ‘조선’의 인상-
On the Landscapes of Illustrations with a Serial-Novel in the Early Period of “Mailsinbo(每日申報)” (2)-Tsuruta Goro(鶴田吾郞) and the New Korean repres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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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식민지 이후 『매일신보』에서 연재소설의 삽화를 그렸던 작가들의 예술적 실천 양상을 다루는 일련의 기획 중 2번째의 것으로, 1912년부터 『매일신보』 연재소설의 삽화를 담당했던 쓰루타 고로의 작업을 중심으로, 그에 앞서 조선에 대한 그림을 그려 매체에 발표했던 토리고에 세이키나 야마시타 히토시 이후, 조선에 부임한 쓰루타가 그린 삽화 속에 남겨진 조선의 인상이 얼마나 다른 독자적인 가치를 갖는 것인가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쓰루타 고로는 1912년 10월 무렵 경성에 건너와 『경성일보』에 근무하면서, 가외로 『매일신보』의 연재소설 삽화를 그렸는데 그는 이 삽화를 자신이 경성을 떠날 무렵인 1914년 7월 무렵까지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그렸다. 또한 그는 소설의 삽화 이외에도 같은 신문의 다른 면에 조선 관련 풍속을 담은 만화를 그렸다. 게다가 그는 일본에서 발행되던 하이쿠 잡지인 『호토토기스(ホトトギス)』에도 쉴새없이 그려 보내 일본 내에서 시각적 측면에서 조선에 관한 관심이 일어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경성에 머무는 동안 쓰루타는 ‘쓰루타 고로’와 ‘쓰루타 레키손’이라는 두 가지 이름을 활용한 다양한 싸인을 만들어 사용하면서, 매번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하였는데, 그는 단지 많은 작품을 그려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존 조선에 머물면서 자신이 받은 조선에 대한 인상을 솔직하게 그려내어 신문과 잡지 등의 인쇄 매체에 발표하여, 기존 조선을 여행하거나 조선에 머무르면서 활동했던 다른 화가들과는 다른 새로운 ‘조선’에 대한 인상을 구성하였다. 그는 서양화의 기법으로 세밀하게 한복의 풍성한 곡선을 살린 인물들을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세시풍속을 잘 살린 풍속만화를 그려, 당시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에게도 널리 사랑받았던 것이다. 또한 연재소설 삽화면에 있어서도 쓰루타는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을 선보였다. 그는 이해조의 「봉선화」에서 「우중행인」에 이르기까지에는 조선인 작가와 일본인 삽화가 사이의 언어적 소통을 뛰어넘는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조중환 등의 번안소설에서는 본격적으로 서양화 기법을 삽화에 적용하여 이전까지는 연재소설 삽화에서 볼 수 없었던 이미지의 삽화들을 그려내어,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 새로운 연재소설 삽화의 전형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Abstract
本論文は、植民地初期『毎日申報』で連載小説の挿絵を描いた日本人作家たちの芸術的実践を評価する一連の企画で2番目として具に1912年から『毎日申報』連載小説の挿絵を担当した鶴田吾郎(1890~1969)を分析の対象としていつた。彼に先立って朝鮮に関する絵を描いて新聞と単行本に発表した鳥越静岐(本名は細木原靑起)と山下鈞などに比べて鶴田が描いた挿絵の中で再現される朝鮮の印象がどのように異なる独自の価値を持つのかを確認することである。 鶴田吾郎は1912年10月頃、京城に渡り『京城日報』に勤務しながらその仕事のほかに『毎日申報』の連載小説挿絵を継続的に描いて彼が京城を離れた1914年7月頃までほぼ2年間休みなく挿絵を描かれてきた。鶴田は連載小説のほか、不定期に同じ新聞の他の面に彼が朝鮮について持つた印象を風俗画と描いた。そこに彼は日本で発行されていた俳句雑誌『ホトトギス』にも度々朝鮮の画像を送り、日本で視覚的な側面に朝鮮への関心が起きるために大きく寄与した。 京城で滞在しながら鶴田吾郎は‘鶴田吾郎’と‘鶴田櫟村’という二つの名前を活用した様々なサインを使用して多くの作品を描くなど旺盛な創作力を示しあげた。彼は自分が受けた朝鮮の印象を新聞や雑誌などの印刷媒体に率直に描いて出して、既に朝鮮を旅行したり、朝鮮に滞在しながら活動していた他の画家とは異なる新たな‘朝鮮の印象’を構成した。彼は洋画の技法で韓服の豊かな曲線をよく生かした挿絵や朝鮮の風習を扱う風速漫画を描いて当時の日本人だけでなく朝鮮人たちにも広く愛されたものである。 そのうえ、連載小説の挿絵の部分においても、鶴田吾郞は色々な新しい試みを披露した。彼は李海朝が書いた「鳳仙花」から同じ作家の「雨中行人」まで、朝鮮人作家と日本人挿絵家の間の言語的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超える様々な試みを披露するだけでなく、そこに趙重桓の翻案小説では、本格的に西洋画の手法を実例に適用して以前まで連載小説挿絵で見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画像の実例を描き、後に植民地朝鮮で新しい連載小説挿絵の典型を提示し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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