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幄對說話와 효종의 비밀 편지

The Secret Interview and Letters between King Hyojong and Song Si-y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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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현종개수실록』과 『숙종실록』에 전하는 「幄對說話」 및 효종이 송시열에게 남긴 4편의 비밀 편지는 북벌론의 실상 및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로서 주목할 만하다. 1659년(효종 10) 3월 11일 효종과 송시열이 독대하며 나눈 대화의 기록인 「악대설화」는 북벌이라는 대원칙에 공감했으나 상이한 각론을 지녔던 두 사람이 북벌의 전체적 방향성을 설정하고 당면한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의 기록이었다. 독대 이후 효종이 송시열에게 내린 3편의 밀찰을 통해서는 조정 현안의 해결 방안과 북벌의 보좌할 대신들에 대한 평가, 그리고 민심의 동향을 긴밀하게 논의했던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효종이 세자를 통해 전한 이른바 「密勿之敎」에는 북벌의 구체적인 방도에 관한 10조항의 의견이 제시되어 있다. 군사제도 재편과 군사력 확보,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양민 보호와 재정 확보 방안이 주된 내용이었다. 「악대설화」와 효종의 밀찰들이 후대에 공개된 경위는 현종~숙종 연간 송시열의 정치적 부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악대설화」는 1665년 사관 이세장 등에 의해 사초에 수록되었지만, 경신환국 이후에야 『현종개수실록』에 기재될 수 있었다. 그리고 「밀물지교」는 갑술환국 직후 숙종에게 전해졌고, 이를 읽은 숙종은 기해예송 이후 송시열이 받았던 효종에 대한 불충과 역심의 혐의를 벗겨주었다. 결국 효종 연간 두 사람이 동심하여 북벌을 추진한 증거인 「악대설화」와 밀찰들은 숙종대에 이르러 송시열의 정치적 정당성을 재확인 하는데 결정적 근거로 활용되었다.

Abstract

≪显宗改修实录≫和≪肃宗实录≫所记录的<幄对说话>以及孝宗赐给宋时烈的四封密信,是反映北伐论的实际状况以及两人关系的资料,值得关注。1659年3月11日,孝宗和宋时烈交谈的记录便是<幄对说话>。两人虽然在北伐的大原则上观点相同,但在具体方法上各持己见。由此,两人为了设定北伐的整体方向并共享对眼前现实的理解而进行了对话,史官记录对话。 对话之后,孝宗赐給宋时烈三封密信。密信则反映对朝廷悬案的解决方案、对辅佐北伐之大臣的评价和两人紧密地商议民心动向的情况。还有,孝宗通过王世子传递的所谓<密勿之教>,提示了关于北伐具体方法的十条意见。主要内容是军事制度改编、军事力量的确保以及作为支撑的保护良民和确保财政的方案。 <幄对说话>和密信,后世被公开的经过则与显宗~肃宗年间的宋时烈的政治上的变位有密切的关系。1665年史官李世长把<幄对说话>收录于史草,但庚申政治变局以后才能载于≪显宗改修实录≫。另外,<密勿之教>则甲戌政治变局之后才传递于肃宗,肃宗在己亥礼颂之后,根据<密勿之教>洗脱了加给宋时烈的不忠和逆心嫌疑。最终,孝宗密信在恢复宋时烈的政治合法性方面,成为具有决定性的根据。

참고문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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