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1962년 중국조선족의 북한 이주와 민족정체성
A Study on the Ethnic-Korean Chinese Migration to North Korea and National Identity, 1949~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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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중국으로 이주하던 조선인이 반대 방향 즉 한반도로 역류하게 된 변곡점은 일제의 패망이었다. 조선인의 한반도 귀환 고조는 광복 후 약 2년 간이었는데, 그간 재중 조선인 총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0여만 명의 조선인이 귀환했다. 한국전쟁 발발 전부터 1960년대 초까지 조선족의 귀환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전쟁 발발 전야에 수만 명이 귀국하였고 전쟁 기간에는 또 지원의 명목으로 수만 명의 인구이동이 있었다. 휴전 후 북한 정부가 경제재건에서 부닥친 가장 큰 문제는 노동력 부족이었다. 중국 정부는 북한의 경제재건을 돕기 위하여 조선족의 북한 이주를 조직했다. 중국 정부가 이주를 조직하자 한반도 민족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6만여 명의 조선족이 북한으로 이주하였고 북한 국적에 가입했다. 중국 조선족의 대규모 불법 입북은 1961년과 1962년에 최고조를 이루었는데 2년도 안 된 기간에 “脫중국” 조선족이 근 10만 명에 달했다. 조선족의 북한 유출에서, 중국 정부는 언제나 북한의 의견을 수용하고 북한의 입장을 배려했다. 물론 한반도 조국 관념이 일상적 유동의 사상적, 감정적 기초를 구성했으며, 조선족들이 대규모로 북한으로 귀환하는 기반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북한으로의 유동과 민족 정체성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계속 중국에 남았거나 입북하였다가 돌아온 사람들로 말하면 광복 후 1960년대 초반까지의 유동 과정은 한반도 민족 정체성이 점차 해체되고 중국 조선족의 정체성을 정립시켜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Abstract
流向中国的朝鲜人,向反方向即向朝鲜回流的拐点为日本的敗降。朝鲜人的回流高潮发生在光复以后的两年期间,相当于在华朝鲜人总数的三分之一的70多万人回流到朝鲜。朝鲜战争爆发之前到20世界60年代初为止,中国朝鲜族的向朝鲜的流动经历了几次进程。朝鲜战争爆发之前回到朝鲜半岛的朝鲜族为几万人,战争期间为了支援又有几万朝鲜族流向朝鲜半岛。停战后,朝鲜在重建家园过程中遇到的最大的问题就是劳动力不足。中国政府为了支持和帮助朝鲜的经济重建,多次组织了朝鲜族的移民。由于朝鲜族原本的国家认同就是朝鲜,中国政府组织的时候就有6万多人参加了移民,并加入了朝鲜国籍。中国朝鲜族大规模逃向朝鲜为1961年和1962年,不到两年的期间“逃离中国”的朝鲜族将近10万人。在朝鲜族向朝鲜的流动过程中,中国政府总是收容朝鲜政府的意见,并照顾朝方的立场。当然,朝鲜半岛祖国观成为朝鲜族日常性流动的思想感情基础,并成为朝鲜族大规模向朝鲜回流的根基。向朝鲜的流动和民族认同之间有非常密切的关联,一直留在中国抑或逃离后再次回到中国的朝鲜族来说,60年代初为止的人员流动过程就是逐渐解构原朝鲜人认同,并确立作为中国朝鲜族的新的民族认同的过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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