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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활』의 역사적 의미 재론-잡지사의 사회적 실천을 중심으로-

Re-discussion on Historical Implications of The New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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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이 글은 식민지 조선의 최초의 사회주의 잡지를 발간하고, 최초의 필화 사건의 당사자로 알려진 신생활사의 여러 대외적 활동에 주목했다. 사학계와 국문학계의 선행연구들은 사회주의 지식과 관련한 잡지의 번역․수용 양상과 그것의 당대적 의미를 규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신생활사의 주요 필진들은 사회주의 담론을 보급하면서도 동시에 사회 현안에 즉각적으로 개입했다. 예컨대 신생활사는 1922년의 ‘신석현 학살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내 언론, 사회단체들과 제휴하여 식민통치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했고, 잡지사의 주도적인 움직임은 기미년의 민족적 궐기를 환기할 만큼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생활사는 체육대회, 강연회를 개최하며 지식과 담론의 차원과는 다른 경로로 민중과 접촉했고, 강력한 인쇄 역량을 기반으로 여타 사회운동단체와 연계된다. 이른바 ‘신생활사 필화 사건’ 당시 잡지사를 둘러싼 전방위적 행정․사법 조치는 사회주의 지식체계의 유통지이자 ‘활동기지’로서의 신생활사의 면모를 방증한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New Life, which is known as the first “socialist magazine” of colonial Korea and the first magazine to be indicted for writing. Previous studies have been conducted with a focus on the translation of the socialist ideology and its contemporary meaning. Proliferating socialist ideas, key members of New Life also responded to social issues. In the wake of the so-called Shin Seok-hyun(新潟県, Niiagata in Japanese) massacre in 1922, New Life planned collective actions by forging a relationship with media and social groups both in Colonial Korea and Imperial Japan. The magazine's attempt to criticize Japanese colonial rule was considered formidable. Furthermore, The New Life did not only remain in the domain of knowledge and discourse, but also sought to have a direct contact with the public. Sports competitions and public lectureswere carried out as means to directly appeal to the people. Based on its strong printing capabilities along with a wide network of media, regions, and religions, The New Life could function as a pivotal base for activists. Indiscriminative judicial measures aimed at magazines prove its significance in the society. By reviewing The New Life's social participation, it is expected to contribute to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sphere of socialism in the early 1920's of Colonial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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