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德年間(1506-1521)의 정국 운영과 經筵
The Operation of Political Situation and Emperor's Learning in Zhengde Period(1506-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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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정덕연간(1506-1521)의 경연은 고명대신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즉위년 10월 ‘日講儀注’가 제정된 것을 계기로, 즉위년 11월 3일에는 日講, 그리고 정덕원년 2월 2일에는 월강이 처음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덕제는 황위에 즉위한 이후에도 놀기를 좋아하는 무절제한 생활을 지속함으로써, 일강과 월강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를 비판하는 고명대신들을 비롯한 朝臣들은 사직 요청을 통해 경연의 정상적 운영을 촉구하였다. 이로써 正德 初(원년~4년)에는 특히 崔杲의 염인 사건을 계기로 조신들에 대한 탄압이 강화됨으로써 환관․朝臣들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연(월강)은 중단되었지만, 일강의 경우는 고명대신을 비롯한 조신들의 사직 요청과 과도관들의 공론을 통한 압력에 의해 간헐적이나마 열리게 되었다. 한편, 정덕5년(1510) 8월 태감 劉瑾세력이 마침내 거세된 일을 계기로, 유일하게 남아있던 고명대신 李東陽조차 사직을 요청하면서까지 경연의 정상적 운영을 요청함에 따라, 이에 동조하는 과도관을 비롯한 조신들의 공론이 고조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정덕제는 사태의 악화를 무마하기 위해 경연 재개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지만, 이 역시 차일피일 미루면서 아주 간헐적으로만 재개될 뿐이었다. 따라서 유근세력이 거세된 정덕5년~7년(1512) 기간에도 황제의 방탕한 생활과 정사를 등한시하는 상황에서, 잠시나마 재개된 월강은 물론이고 일강마저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렇듯 경연이 잠시 재개되다가 또 다시 중단되는 등 시행과 중단을 반복하다가, 정덕8년(1513) 이후에는 황제가 豹房에 거주하면서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는 상태에서 황제는 정덕8년 4월 경연에 잠시 참석했지만, 이마저도 강독 도중에 중단하고 말았다. 따라서 그 이후로는 정덕9년에 두 차례, 그리고 정덕10년에 한 차례에 걸쳐 경연 개최를 명하였지만, 특히 정덕12년(1517) 이후로는 황제가 북방과 남방 순행을 강행함으로써 視朝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월강과 일강은 당연히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경연 운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창업 후 150년이 지난 정덕연간에 이르러서는 유교주의 통치이념에 입각한 명초의 국가시스템은 전체적으로 와해되어갔다.
Abstract
正德年間(1506-1521)的經筵, 是依先帝時的顧命大臣(劉健․謝遷․李東陽)有所强力地勉强, 就在正德皇帝登上的那年(1505)10月才可爲制定了‘日講儀注而開始的. 因而日講自從該年11月開始施行, 月講(經筵)也從正德元年(1506)2月開始擧行了. 這樣按照顧命大臣的勸告, 經筵雖然在正德元年開始有所擧行, 但在正德年間的經筵制度具有不少的曲折. 在正德初年(元年~4年), 正德皇帝一直耽溺嬉遊, 騎馬射箭, 且歌舞淫樂, 所以把國事全都交給‘8虎’宦官管掌. 因此, 毋論月講, 日講也無法定常地施行. 這種情況就引起了顧命大臣和朝臣的批評和不滿, 因而顧命大臣和朝臣們就以請求辭職來, 要求經筵該依規定要施行. 尤其到了正德元年9月, 就具有太監崔杲建議發行鹽引的事件做爲開端, 又有到了正德3年6月被發現在皇宮裏的御道上匿名文件的事情, 宦官與朝臣之間的糾紛, 更爲嚴重深化. 在這種情況下, 月講就被爲暫停而不再擧行了. 但由顧命大臣們以提出辭職來表示抗議, 因而日講雖然還可以維持其命脈. 但它也不能按照規定的施行, 而只不過間歇地施行而已. 到了正德五年(1510)8月, 剛好太監劉瑾爲中心的奄黨勢力終於被刪除,且唯一有所殘留的顧命大臣李東陽也請求辭職,以强烈地要求經筵必須正常地擧行. 隨着李東陽的抗議, 科道官們也表示同意他的意見, 因而廣泛地形成了公論. 因此, 正德皇帝也是爲了瀰漫這種情況不再惡化, 雖然就闡明了經筵要重新擧行的諾言, 但也常拖延開設經筵的日期, 所以經筵只能偶兒施行而已. 由此可見, 到了創業之後有經過150年的正德年間, 根據儒敎理念建築起來的明朝之國家構造, 就變爲全面地崩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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